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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 Aug 02. 2019

우리가 기록해야 하는 이유

문화란 무엇인가: 기록으로 알아보는 문화의 의미

 '문화'라는 단어는 다양한 방면에서 여러 의미로 사용된다. 기획자를 꿈꾸는 필자 또한 '문화'라는 단어를 많이 접하고 사용한다. 하지만 필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문화'라는 것이 무엇이고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혹은 생각해 본적 조차 없을 것이다.

 

'문화란 무엇일까?'


 필자는 '문화'라는 것에 대해 고심해보았다. 그리고 스스로 정의 내린 '문화'를 잘 표현할 수 있는 장소들을 찾아가 보았다.





우리가 기록하는 이유


 우리는 끊임없이 기록한다. 사소하게는 개인의 일상을 담은 일기부터 국가나 인류의 대소사까지 많은 것을 기록으로 담아낸다. 우리는 항상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사진과 영상을 촬영하고, 컴퓨터와 스마트 기기를 이용해 정보를 만들어낸다. 이렇게 우리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기록하는 행위 속에서 살아간다.


 그렇다면 기록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왜 기록을 할까? 

 기록이라는 단어는 사전적으로 ‘주로 후일에 남길 목적으로 어떤 사실을 적음.’으로 정의된다. 또한 ‘매체로 고정되어 있고 내용, 맥락, 구조를 가지며 인간 기억의 확장으로서 또는 설명 책임의무를 다하기 위해 사용되는 데이터나 정보’의 개념으로 쓰인다. 즉, 기록은 개인이나 단체의 활동을 특정 매체에 담은 것. 행위와 매체의 결합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개념으로 봤을 때, 기록에 있어 매체는 빠질 수 없는 요소이다. 그 증거로 매체는 수천 년에 걸쳐 끊임없이 발전해왔다. 필자는 기록 매체의 발전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 이유를 따라가면 인간이 기록을 하는 이유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때문에 필자는 기록의 역사와 기록 매체의 발전과정이 담긴 기록매체박물관을 통해 인간의 기록은 어떻게 발전해왔으며, 인간은 왜 기록을 하는지 그 이유를 찾아보고자 했다.


 필자는 기록 매체의 발전과정을 통해 인간의 기록 욕구에 대해 살펴볼 수 있었다. 인간은 사고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기록에 대한 욕구를 느꼈고 그 증거물로 문자와 문명 발생 이전의 동굴벽화, 그림문자를 남겼다. 이후 지속적인 기록과 발명, 기록 매체의 발전을 통해 기록 욕구를 발산하고 충족시켜왔다. 이러한 기록 매체의 발전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기록매체박물관을 통해 필자는 기록 매체의 발전을 ‘보존’, ‘전달’, ‘정확성’이라는 세 가지의 키워드로 정리할 수 있었다. 인간은 자신들이 겪은 사건이나 행위를 더 정확하게 기록하고 더 오랜 기간 보존하여 후대 혹은 다른 지역으로 전달하기 위해 계속하여 기록 매체를 발전시켜 온 것이다.


 더 나아가 필자는 인간이 어떠한 것을 기록하고, 단순한 기록으로도 모자라 사실과 더 유사하게, 그리고 더 오래, 더 멀리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그 정보의 중요성 때문이라 생각한다.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동시대 혹은 후대에 전달, 계승하려는 노력이 인간의 기억을 넘어 기록으로 발전한 것이다. 중요성에 대한 예를 들자면, 선사시대의 고인돌을 이야기할 수 있다. 선사시대 사람들은 그들의 지도자의 죽음과 장례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그 중요성을 표시하기 위해 고인돌이라는 장례방식을 선택했다. 이 돌무덤이라는 기록이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전달되어 선사시대의 장례 양식과 당시의 생활양식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이처럼 기록은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 과거와 미래를 연결한다. 필자는 이렇게 기록되어 시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중요한 정보들이 문화가 된다고 생각한다.


기록매체박물관


                                                                                                           



기록은 문화일까?


 ‘기록은 문화가 된다.’ 너무 심한 비약일까? 그렇다면 계승된 기록들은 어떻게 될까? 

 여기서 기록이란 글을 포함하여 회화, 조각, 건축, 사진, 영상 등의 다양한 매체를 뜻한다.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전승되고 계승된 기록은 전승자에 의해 재현된다. 재현된 기록은 활용되고 축적되며, 재생산된다. 이렇게 재생산되는 과정에서 기록은 하나의 형식(Form)으로 굳어진다. 굳어진 기록은 생활양식이나 상징체계, 사상, 예술, 종교 등의 형식으로 정형화되는데, 필자는 이렇게 형성된 것이 문화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발생한 문화는 다시 기록 – 재현 – 재생산을 반복하며 유지, 계승된다. 이 과정에서 문화는 발전하거나 또 다른 문화의 생산으로 이어진다. 문화가 이러한 과정을 거쳐 형성되기 때문에 필자는 기록은 문화가 된다고 생각한다. 중앙대학교 예술경영학과 황동열 교수가 저술한 「문화·예술 아카이브의 효율적 운영방안」에서도 '인류는 당시대에 산출된 기억과 경험을 남겨 후대에 전하였다. 전승된 기록은 후대에 축적되고 활용되어 기록문화를 구성하였고, 또다시 후대에 전해 지면서 누적되어 사회와 문화를 발전시켜왔다.'라고 이야기하며 기록이 문화가 됨을 밝히고 있다. 이는 기록은 문화라는 필자의 주장을 뒷받침해준다.





필자가 생각하는 문화 :기록은 문화이다.


 그렇다면 기록되지 않는 것은 문화가 아닐까? 필자는 ‘문화’란 무엇이라고 생각하기에 ‘기록’이 문화라고 주장하였을까. 

 영국의 문화 인류학자 타일러는 문화를 '지식·신앙·예술·도덕·법률·관습 등 인간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획득한 능력 또는 습관의 총체'라고 정의했다. 영국의 문화연구자인 레이먼드 윌리엄스는 본인의 저서에서 문화를 세 가지의 의미로 정의했다. ‘지적 · 정신적 · 심미적 능력을 계발하는 일반 과정’, ‘한 인간이나 한 시대, 혹은 한 집단의 특정한 생활 방식’, ‘지적 산물이나 지적 행위, 특히 예술 활동’이 그 내용이다. 이렇게 정의되는 문화는 ‘공유성’, ‘학습성’, ‘축적성’, ‘변동성’등의 속성을 가진다.


 유명 학자들이 정의하고 사회적으로 위와 같은 속성을 가지는 문화를 필자는 이렇게 정의했다.  ‘집단에 의해 발현된 어떠한 양식 및 사상이 유지되고 계승되며 유의미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발전한 산물’. 필자가 정의한 개념으로 문화를 볼 때, 기록은 문화를 생산하고 설명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기록되지 않고 기억에 의존한 사상 및 양식은 언젠간 소멸한다. 유의미한(중요한) 가치가 유지되고 널리 퍼지며 후대에 계승되기 위해서는 기록되어야 한다. 문화는 기록함으로써 유지, 계승되고 계승된 문화가 재현됨으로써 재생산되어 문화가 된다. 


 위와 같은 맥락에서 기록은 문화이고 문화는 기록이라고 정의할 때, 그 시대에 기록되지 않은 사상 및 양식 등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 시대 당시에 기록되지 않은 사상 및 양식, 사회적 물결은 시간이 지난 후에 또 다른 방식으로 기록되어 담기게 된다. 예를 들면, 금주령이 내려진 당시의 미국의 생활양식과 미국인들의 사상은 기록되기 힘들었다. 생활양식과 사상을 문화로 본다면 이 시대의 생활양식과 사상, 밀주와 비밀 클럽은 어떤 하나의 문화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로 인해 변화된 미국의 음주 문화도 문화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당시의 사회 분위기상 어떠한 방법으로 기록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 시대에 기록될 수 없었던 많은 일들은 사람들의 기억에 의해 전해졌고, 이는 후에 스크린 등에서 재현되었다. 이렇게 재현된 이 시대는 문화의 한 장르(앞서 설명한 하나의 형식)로 굳어져 계속해서 재생산되고 있다. 이렇게 그 시대 당시에 기록되지 않은 것들은 후에 영화, 다큐멘터리, 책, 건축, 회화 등으로 재현되어 또 다른 종류로 기록된다. 이렇게 재현되고 기록됨으로써 문화가 되고, 재생산되면서 또 다른 문화로 발전한다. 유지되고 계승된 문화는 언젠간 어떠한 방법으로든 기록되기 마련이다. 때문에 필자는 문화가 되기 위해선 기록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문화의 필수적 요건으로서 기록은, 문화 그 자체이다. 기록은 문화이며, 문화는 기록이다.





새로운 문화가 된 기록


 문화가 기록되고 기록된 문화가 또 다른 문화가 되는 장소에 다녀왔다.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50주년의 일환으로 기획된 전시 <떠도는 영상들의 연대기>이다. 해당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영상 아카이브를 고전적인 문서고를 연상시키는 박스들 사이에 랜덤한 패턴화의 형태로 영상을 전시한 전시이다. 아카이브란 ‘소장품이나 자료 등을 디지털화하여 한데 모아서 관리할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손쉽게 검색할 수 있도록 모아 둔 파일’을 뜻한다. ‘기록’과 ‘보관’이라는 주제로 전시를 한 것이다. 필자가 정의한 ‘집단에 의해 발현된 어떠한 양식 및 사상이 유지되고 계승되며 유의미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발전한 산물’이라는 의미를 가진 문화가 영상으로 기록되었고, 그 기록된 영상이 전시로 재현되고 재생산되었다. 문화는 기록이고, 기록은 문화라는 의미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전시였다.


 전시된 영상들의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기록이 문화가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시된 작품 중 전소정 작가의 <보물섬>, <어느 미싱사의 일일>, <마지막 기쁨>, <열두 개의 방>은 ‘일상의 전문가’ 연작 시리즈로 사라지고 있는 혹은 곧 사라질 제주도 해녀, 미싱사, 줄 광대, 피아노 조율사라는 직업에 대해 기록했다. 이 직업들은 사회·문화적인 측면에서 시대를 보여주는 직업들이며 시대의 사회·문화적인 변화로 존재의 유무가 결정된다. 이 작품은 해당 직업들을 조명하며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기계화로 넘어가는 시점의 생활양식 문화를 기록한 것이다. 또한 이완 작가의 <메이드 인-캄보디아>, <메이드 인-미얀마>, <메이드 인-태국>은 캄보디아, 미얀마, 태국의 식민지 역사, 사회주의 체제, 군부 정치로 인해 나타나고 변화된 생활양식에 대해 기록했다. 당시에는 기록되기 힘들었던 일들을 현시대에 기록해 하나의 문화를 보여준 것이다. 


떠도는 영상들의 연대기 전시장 입구





 필자는 이렇게 문화가 기록되고, 기록이 또 다른 문화가 되는 것을 보았다. 필자의 눈으로 문화에 있어 기록의 중요성을 확인한 것이다. 우리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기록해야 한다. 문화란 예술작품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집단에 의해 발현된 어떠한 양식 및 사상이 유지되고 계승되며 유의미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발전한 산물’. 우리는 유의미한 가치가 있고 중요하다고 여기는 현대의 문화를 유지시키고 계승시키며 발전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기록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기록해야 하는 이유이다.




참고 문헌

- ‘Culture-기록매체박물관’, 월간인쇄계 2017년 3월호, 2017.

- 황동열, ‘문화·예술 아카이브의 효율적 운영방안’, 『기록인(IN)』, 제 18호, 2012, p.22.

- S. A. Tylor, 『원시문화 Primitive Culture』, 1871.

- Williams, R., 『Keywords: A vocabulary of culture and society』,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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