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의 색깔
네가 어떻게?
인정하기 힘들 것들이 있다. 간절히 바라는 것일수록 그렇다. 연인의 사랑, 존경하는 사람의 인정, 품에 키워온 꿈. 그런 것들은, 누구라도 먼저 갖고 있으면 받아들이기 어렵다. 자꾸만 그들의 성취를 '우연' 또는 '행운'으로 치부한다. 그렇지 않고는 설명이 안 되는 것처럼.
몇 개월 전쯤 가족 채팅방에 알림이 울렸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조용했던 그 방. 남편이 상기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윤정이도 브런치 알지?"
브런치. 2019년 쯔음이던가, 한참 케냐에서 살 때 알았던 플랫폼. 글을 쓰는 플랫폼이었다. 네이버 블로그에 권태를 느낄 때 만났던 신기한 시스템. 호기심에 한번 작가에 도전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곤 단박에 탈락. 그 이후로는 한 번도 보지 않았다. 자존심이 상해서, 그냥 잊고 살았던 그 단어.
"형수가 브런치 작가 됐다고 하네~"
마음이 덜컹거리면서 귀가 멍멍해졌다. 남편은 분명 조용히 말했는데, 누군가 확성기를 대고 외친 듯했다. 브런치 작가. 그래, '90년생이 온다'라는 책도 브런치 작가가 쓴 글이라고 얼핏 들었던 것 같다. 나와는 다른 재능을 가진 사람. 특별한 사람이니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모르는 사람이 브런치 작가인건 괜찮았다.
'카톡, 카톡' 가족방에 축하글이 하나 둘 올라왔다. '잘됐다!'를 애써 내뱉는 나의 입술. 모음 한 글자가 더해질 때마다, 속에서 쓴 물이 올라왔다. 분명히 잊고 살았던 단어인데, 머릿속이 순식간에 가득 찼다. 남편에게 '정말, 잘됐다'를 어색하게 반복하던 그날. 혀끝에 자라난 돼먹지 못한 질투는 조용히 한마디 내뱉었다.
'근데... 어떻게?'
형님의 작가 소식을 듣고 나서도, 한동안 그 글을 열지 못했다. 마치 내 성적표를 열어보는 것처럼 떨렸다. 내가 못했던 걸 하고 있는 사람, 그걸 보는 게 이렇게 어려웠나. 간절히 원하던걸 아닌 척 던져 놓았던 사람. 못 가진 게 아니라, 버린 것처럼 행동했던 나의 과거. 못난 자존심에 덮여있던 나의 욕망이,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질투라는 가면을 쓰고.
누군가의 능력을 섣불리 판단하는 건 늘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 삶을 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라 되새기던 날들. 다른 이의 성과를 가벼이 여기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시간. 견고할 줄 알았던 나의 성이, 좌절된 꿈의 파도 앞에선 속절없이 무너졌다. 모래성이었다.
며칠간 잠을 자지 못했다. 형님을 진심으로 축하할 수 없는 내가 미웠다. 그녀의 글을 열어볼 용기가 없는 내가 창피했다. '나는 왜 그럴까? 왜 이렇게 비겁한 겁쟁이가 됐을까?'
어느 저녁, 남편에게 고백을 했다.
"오빠, 나 사실 너무 자존심 상해."
"왜 자존심 상해? 형수가 작가가 된 게?"
다음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남편이 말을 이었다.
"윤정이가 정말 그게 하고 싶었나 보다."
누가 내 등짝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았다. 한 여름날의 등목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고 싶어서 질투하는 거구나. 하고 싶은데, 안 하고 있으면서 괜한 사람을 깎아내리고 있구나. 바보같이.
주말 아침, 밥도 먹기 전에 식탁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그때의 내 모습을 보고 싶었다. 2019년, 나는 어떤 글로 지원했었더라. 떨리는 마음으로 인터넷에 접속했다. 마치 중학교 생활기록부를 찾아가는 느낌이었다. 오래된, 잊고 있던 성적표를 들춰보는 마음.
주르륵, 마우스 휠을 내리는데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런 글로? 이렇게 써서 내가 지원을 했었다고? 탈락해서 자존심이 상했다고? 3개의 글이 있었는데, 각각의 글 모두 채 20줄을 넘지 않는 짧은 글이었다. 지금 봐도, 합격하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걸로 나는 자존심을 세우고 있었구나.
성찰이 부족한 실패는 언제나 왜곡된 자존심으로 날 찾아왔다.
그날 저녁, 형님의 글을 읽었다. 그녀의 글에서 차분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언제부턴가 요가를 하고 있다던 말이 떠올랐다. 형님과 닮아있는 문장. 문장을 하나하나 지나갈 때마다, '어떻게?'라는 질문을 던졌던 내가 창피했다.
마지막 문단의 마침표가 찍힐 때, 나의 질투도 함께 끝이 났다. 대신, 제대로 써보고 싶다는 용기를 시작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치 소중했던 베프를 오랜 시간이 지나서 만나는 느낌. '따라~라라~라~'사랑의 싣고 노래가 들렸다. 저 문 너머에, 네가 있겠지. 손끝이 절였다. 너는 어떤 모습일까.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마치 오늘 쓰기로 약속한 사람처럼 키보드를 두드렸다. 이렇게 쓰고 싶은 말이 많았나. 하얀 백지 속에 채워지는 글자를 보고 있자니, 절로 배가 불렀다. 이런 마음을 나는 어떻게 외면했을까. 그리고 또 얼마나 많은 마음을 외면하고 있을까.
나쁘다고만 생각했던 질투가, 문득 신호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간절히 원하는, 그러나 내가 외면했던 것들의 다른 모습.
나는 오늘 내가 했던 질투들을 다시 돌이켜 본다. 그 속에, 아직 모르는 '내'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