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색) 엄마의 '나'

질투의 색깔

by Anne H
그게, 내가 엄마에게 속은 마지막 거짓말이었다.



부모가 모든 걸 품을 수 없다는 걸 그때 알았다. 대낮에 동네를 걷는 게 허락이 필요했던 시절. 나는 가끔 그 시간에 멈춘다. 그리고 꿈을 꾼다. 엄마에게 소리를 지르고 대문을 열고 나가는 꿈을. 저녁만이 반복되었던 나의 멈춰있는 16살.


엄마는 거짓말을 했다. 너를 위한 일이야.


9등급제가 본격 도입되던 해. 나는 어렵게 들어간 자사고에서 자퇴를 했다. 학교에 다닌 지 4개월이 막 지났을까. 엄마는 내 성적을 본 뒤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자퇴를 권했다. 깨끗한 성적표에 다시 숫자를 써보자고. 그럼 네 미래가 달라질 거라고.


그게 내가 엄마에게 속은 마지막 거짓말이었다.







학교 밖을 나선 지 얼마 안 된 여름날, 동네를 걸었다. 후줄근한 티를 걸쳐 입고 머리를 대충 묶은 채. 낮은 산 옆, 10동도 안 되는 아파트 단지. 한 바퀴를 걸어도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날 엄마는 내게 말했다. 학교를 가야 할 시간 동안은 나가지 않는 게 좋겠다고.


"남들이 보면 궁금해하잖아. 괜히 이상한 소문만 돌고"


소문, 그 단어에 갑자기 손이 저렸다.


9등급 성적보다 참을 수 없던 건 엄마의 거짓말이었다. 엄마는 곧잘 나를 숫자로 여겼다. 자신의 성적표로. 어쩌면 엄마가 깨끗하게 다시 쓰고 싶은 건, 나였을지도 모른다. 세이브 포인트로 돌아가고 싶었던 엄마. 그리고 당신의 실패를 아무도 몰랐으면 하는 욕심.


자퇴가 부끄럽지 않았던 내게, 소문이란 단어는 생소했다. 용기 내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 멋진 일이라 생각했다. 엄마도 같은 마음일 거라 여겼던 어떤 날들. 나를 위한 일이라 말하던 당신의 입술.


확신이 들었다. 엄마는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긴 어렵구나.



당연한 것들이 멀어질 때, 마음은 한없이 추락했다.



추락한 바닥에 나는 한동안 누워있었다. 이상하게도 편했다. 그간 '잘했어요'를 받기 위해 노력했던 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언제나 나만을 생각하는 것 같았던 그녀의 기준. 그 기준이 무너졌다. 그 탑이 무너지고 나서야, 나는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다.


온전히 나를 위한 선택.






지는 해가 사선으로 책상에 드리웠다. 벽지에 깔린 분홍 나비가 반짝였다. 나는 창문을 살짝 열고, 얇은 커튼을 올렸다. 앞이 뻥 뚫린 우리 동. 그 건너편 궁산으로 새하얀 구름이 길게 늘어져 지나갔다. 나는 책상에 턱을 괸 채 그 구름을 끝까지 쳐다보았다. 처음에서 중간으로, 또 중간에서 끝으로. 움직이지 않을 것 같던 구름이, 천천히 자리를 옮겼다. 어느샌가 오른쪽 창끝에서 왼쪽으로 서서히.


'너도 가는구나, 멈춰있는 것 같아도, 네 갈길을 가는구나'


16살, 나의 작은 공부방 창문엔 언제나 구름이 떠다녔다. 오색빛의 다양한 구름이 조용히 각자 제 갈길을 찾아 흩어졌다.


'네가 어떤 모습이어도, 저 하늘은 그대로 널 품고 있겠지'


엄마라는 하늘 아래, 언제나 완벽한 모양의 구름이어야 했던 나. 그런 나는 제각각의 모양으로 대기를 활보하는 너를 아주 자주 부러워했다.






마음이 답답할 때, 여전히 하늘을 보는 습관이 있다. 베란다 문을 열고 나가, 따뜻한 해를 받고, 눈을 질끈 감는다. 그리곤 위를 올려본 채, 감은 눈을 서서히 뜬다. 시야 가득히 채워지는 하늘색. 아주 잠시 저 하늘을 떠 다니는 구름이 되어본다.


그리곤 조용히 말한다.


무엇이든 돼도 좋다고, 괜찮다고.


맡길 곳 없는 마음을 띄우는 날, 삶이 때론 참 외롭다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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