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의 색깔
잘못된 질투의 끝엔, 언제나 진실을 외면한 나만 매달려 있었다.
대학교 1학년, 교양과목에서 H를 만났다. 뮤지컬을 좋아하는 친구 이양과 신청했던 클래식 교양강좌. 주로 뮤지컬과 오페라 위주의 강의였다. 두 번째 수업쯔음 이었나, 이양이 공대생이 한 명 더 있는 것 같다고 속삭였다. 그것도 남자. 알고 보니 이양과 H는 아는 사이였고, 우리는 곧 잘 어울렸다.
학교 어느 쉼터에서, H는 양말을 휙 벗고 아빠다리를 하는 내가 멋있다고 했다. 공대 아름이 답지 않게 털털했던 나. 그해 초여름, 우리는 과제를 핑계로 뮤지컬 '사랑의 묘약'을 함께 보러 갔다. 깜깜했던 소극장, 알록달록한 조명. 늦을까 봐 뛰었던 횡단보도.
본격적인 더위가 오기도 이전에, 그렇게 나의 어설픈 연애가 시작되었다.
매사가 느긋하고 무뚝뚝한 H는 어려웠다. 우리는 CC였지만, 많이 만나진 못했다. 어쩌다 비는 공강 때 학식을 먹었고, 가끔 산책을 했다. H는 표현에 서툴렀다. 좋다는 말도, 예쁘단 말도 잘하지 않았다. 남중남고를 나와서 그런 걸까. 애정 넘치는 아빠 옆에서 자란 나는 나날이 조급해졌다. 그 사람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었다. 내가 너에게 중요한 사람인지, 첫 번째인지.
갈증을 느끼는 마음은, 언제나 초침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마음은, 그가 늦는 시간의 배로 닳았다. 답장이 10분 늦으면, 나에게서 20걸음 멀어졌다. 상처받기 싫은 나는, 너를 자꾸 채근했다. 빨리오라고, 더 가까이 오라고. 시간이 지날수록, 바닥을 보였던 관계. 나는 이유가 필요했다. 네가 자꾸만 늦는 이유.
H는 약속 장소인 도서관 하늘색 중앙 소파에 앉아있었다. 어찌나 열중하고 있는지, 내가 온 줄도 몰랐다. 나는 그를 놀라게 하려고 큰맘 먹고 짧게 친 머리를 매만졌다. 보이시한 느낌의 하얀 셔츠가 사부작 소리를 냈다.
"왔네, 오늘은 뭐 할까?"
그의 목소리가 도서관 바닥에 반사되어 올라왔다. '사람 얼굴을 보고 이야기해야지.' 마음이 헐떡였다. 내 답을 듣기도 전에, H는 상기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번에 샀어! 예쁘지? 엄청 신기해 ·······."
첫 아이폰. 그는 내게 보낸 적 없는 찬사를, 속사포처럼 내뱉었다. 아름다움, 신기함, 경이로움. 내가 너에게서 듣고 싶었던 마음의 소리들. 그때부터였을까? 그 은빛 아이폰에 대한 너의 애정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게. 그 작은 물건 앞에서, 언제나 머리를 숙이고 있던 너. 행여나 흠집이 날까, 소중히 어루만지던 모습.
언제부턴가 나는 그 아이폰이 싫었다. 네가 늦는 이유는 다 그거 때문이야. 넌 내가 옆에 있어도, 그것만 쳐다보잖아. 핸드폰을 손에 쥔 모습이 꼴 보기가 싫었다. 좋아하는 사람의 애정이 무언가에게 쏠리는 것.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자존심이 내려앉았다.
나는 네가 모르는 사이, 그 기기와 치열한 애정 싸움을 했다. 나와 함께하는 시간에, 그 아이의 존재가 사라지길 바랐다. 상처가 났으면 했다. 때로는 고장이 나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면, 어쩌면, 그 애정이 내게 조금 더 올 거라는 아주 유치한 착각을 하면서.
돌이켜보면, 그 서툰 연애에 '우리'는 없었다. 언제나 관심받고 싶은 '내'가 있었을 뿐. 그래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가 내게 가졌던 마음이 식을 수도 있다는 걸. 내가 첫 번째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걸. 네 마음보다, 내가 더 중요했던 연애. 변질된 네 마음이 '내 탓'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야만 했던 나의 대학 시절.
죄 없는 핸드폰을 향했던 나의 유치한 질투는 H와의 결별과 함께 허무하게 끝났다. 그리고 그 질투의 끝에서, 나는 비로소 보았다. 자존심 한 자락을 붙들고, 관계의 저 끝에 매달려 있는 나의 모습을. '나 아니야! 나 때문이 아니야! 다른 거 때문이야!' 하고 소리치며, 대롱대롱 위태롭게 매달린 나.
술로 눈물을 채웠던 2번의 계절을 보내고 나서야, 나는 나를 밀어낼 수 있었다.
'내가 싫어진 게 맞아. 내가 첫 번째가 아닌 거야.'
사랑에, 너와 내가 주고받는 관심에 애초에 질투 따위는 필요 없었다. 네 마음을, 진실을 보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내 모습만 있었을 뿐.
지금의 남편은 쿨한 내 모습이 좋다고 한다. 게임을 하든, 친구들 만나든 마음 편히 보내주는 아내. 가끔 남편이 무언가에 팔려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해도 나는 피식 웃는다. 서운함보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그의 모습이 귀여워서.
그리고 그 시간들에도 '내'가 있을 너의 마음을, 나는 이제 알기에. 불안하지 않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