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의 색깔
엄마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TV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이제 막 수학 문제를 풀기 시작했는데. 샤프를 딸각거렸다. 알록달록한 수면 양말을 눌러쓴 발가락이 의자를 쿵, 쿵.
엄마는 친척언니가 미국에 가게 될 것 같다고 했다. 나와 동갑인 언니. 나보다 6개월 일찍 태어난, 같은 학년의 비공식적 라이벌. 친척들은 곧잘 나를 언니와 비교했다. 누가 몇 등을 했다더라, 상을 탔다더라.
그런 언니가 미국에 간다고? 난방을 많이 때웠나, 얼굴이 후끈했다. 손에 땀이 차올랐다. 엄마는 말을 이었다. 고모부가 미국으로 발령을 받았대. 그래서 그 집 식구 모두 미국에 간다더라. 엄마의 목소리가 멀리서 메아리처럼 울렸다. 딸각, 딸각, 딸각. 샤프심이 자꾸만 길어졌다. 쓸모없이 길어진 그 심은 자꾸만 밖으로 이탈했다.
그때의 나는, 단 한 번도 언니를 이겨본 적이 없다.
나는 그녀의 모든 것이 탐이 났다. 목동의 어느 아파트. 방에 꽂힌 세일러문 책 시리즈. 책상 위 컴퓨터, 옷장 속 가득한 원피스. 그런 것들을 이겨보기도 전에, 그녀는 떠난다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그녀가 속절없이 미웠다. 이유 없이, 아니 어쩌면 수많은 이유로 보기 싫었다. 그녀에겐 내가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다. 부모의 경제력. 내가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면 가질 수 없는 것들.
그 벽 앞에서, 나는 자주 숨죽여 울었다.
그리곤 밟힌 마음을 엄마에게 화르륵 쏟아냈다. 지칠 줄 모르는 욕심을 내뱉었다. 미국에 보내달라고. 나도 잘할 수 있다고. 가면 정말 열심히 할 거라고.
엄마는 그날, 열고 들어왔던 방문을 오랫동안 닫지 못했다.
긴 시간동안, 나는 그녀의 삶을 상상했다. 반세상 밖에 떨어진 사람의 성취를. 영어를 유창하게 하고, 넓은 세상을 유영하는 언니의 모습을.
그럴 때마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았다. 가장 못하는 과목의 문제집을 풀었다. 책장 한쪽을 넘기며, 억울한 마음 한구석을 애써 접었다. 내가 가면 더 잘할 수 있는데. 손에 쥔 샤프가 계속 소리를 냈다. 달아오른 마음은, 흑심이 닳을 때까지 결코 식을 줄 몰랐다.
엄마는 말했다. 네가 가고 싶다고 할 때, 엄마도 보내고 싶었다고. 근데 그럴 수 없었다고.
'괜찮아 엄마'
엄마에게 새하얀 백지수표가 있었으면 했다.
그랬다면, 나를 위해 그 어떤 숫자든 썼을게 분명하니까. 하지만 내게 주어진 건 빈 A4 용지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종이 위에, 끊임없이 깜지를 썼다. 아주 작은 글씨로, 알 수 없는 것들을 지겹게 채워나갔다. 빈 종이를 까맣게 채우며, 마음 한가득 채워진 너를 퍼냈다.
깜지가 수북해지던 어느 겨울날, 전화를 받았다. 기다리던 곳에서의 합격. 그 전화 한 통에 나를 짓눌렀던 그녀가 떠났다. 언니가 나보다 더 좋은 대학에 갈 거라고 자랑하던 고모의 모습이 스쳤다. 희열이 올라왔다. 그건 아주 찐득한 질투의 산물이었다.
아빠는 친척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우리는 고기를 앞에 두고, 자꾸만 배가 부르다고 했다. 그날, 나는 깜지로 만든 신발을 신고, 당당히 방문을 닫았다.
그 시절, 언니를 향한 질투는 늘 뜨거웠다. 그 열기에 녹아, 정신을 잃기도, 스스로를 비관하기도 했다. 내가 가질 수 없는, 바꿀 수 없는 것들을 원망하며.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그 질투를 다시 바라본다.
결핍을 느끼지 않았다면
결코 생기지 않았을 나의 욕망을
당신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돌아본 나의 10대는 언제나 흑심 타는 냄새가 났다. 깜지로 태워야만 했던 결핍. 내게 없는 것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배웠던 시간.
언젠가 성인이 되어 언니를 만났을 때, 나는 언니를 향해 웃었다. 이유 없이 미움받았던 그녀에게, 말없이 속삭였다. 당신의 환경. 당신이 가진 것들. 그것들이 부러워 한동안 힘들었다고. 그래서 질투라는 이름으로 당신을 많이 미워했다고.
언니는 아는지 모르는지, 커피를 마시며 재잘거린다. 언니가 영원히 아무것도 알지 못하길. 나의 이 창피함이, 당신에게는 없는 과거가 되길. 나는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원두의 짙은 탄내가 입안 가득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