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 툭 건드려 본다. 어딘가 분명 흔들리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숨을 멈추고, 축축해진 손끝에 온 신경을 집중해 조각을 밀어낸다. 스읍-후, 폐 속 공기가 손톱 사이로 빠져나간다. '툭-' 바닥으로 떨어지는 나무블록 소리가 시원하다.
마음이 복잡하면 젠가를 한다. 견고해 보이는 탑에서 불안정한 조각을 찾아내 다시 쌓는 게임. 젠가를 하다 보면 저 마음 한구석에 박힌 썩은 감정을 도려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멀쩡해 보이지만 사실 헐겁게 걸쳐있는 위태로운 감정들.
떨어진 조각을 손에 들고 어떻게 쌓을지 고민하는 찰나, 어디선가 흙 내음이 들어온다. 남편이 조심스레 까치발을 든 채 창문 앞으로 가더니 이내 창문을 닫는다. 얼마나 지났을까. 흙 내음이 가시기도 전에 빗방울들이 일정한 박자로 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오늘 비가 온다고 했었나.
아직 잘 여문 나무 탑을 사이로 남편이 털썩 마주 앉는다. 탑이 잠시 위태롭게 흔들리더니 이내 안정을 찾는다.
"오늘은 뭐 때문에 이러고 있는 거야?"
낮은 목소리가 팽팽한 공기를 당긴다. 아침에 학교에서 메일이 왔다. 추가학기 등록자들을 대상으로 보내는 안내였다. 석사를 끝으로 더 공부하지 않겠다던 굳은 결의와 다르게 아직도 나는 그 긴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세상이 점점 더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인스타 쇼츠 속 로봇들은 춤추고 스포츠를 하고, 정보검색과 번역뿐 아니라, 웬만한 상담도 AI에게 맡기는 시대. 특별한 전문성 없이는 무대 위에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드는 것만 같다.
이 불안과 초조 속에서 나는 내 삶을 끝까지 잘 살아낼 수 있을까. 그래서 끊지 못한 공부였다. 전문성이라는 표지를 두른 인생의 작은 보험. 죽음보다 더 두려운 건, 어쩌면 내가 설 자리가 없어지는 순간일지도. 손에 쥔 나무 블록을 조심스레 위에 올린다.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
다시 엉성한 블록을 찾기 위해 탑을 두드린다. 인생을 정면으로 마주 할 때마다 숨을 타고 넘어오는 의심이 허파를 가득 채운다. 두드릴 때마다 말없이 움찔거리는 이 젠가 탑이 나를 닮았다. 분명 견고하게 잘 쌓은 것 같은데, 작은 미동에도 힘없이 흔들리는 모습에 허탈함이 몰려온다.
나이를 한 살씩 먹을 때마다, 내가 뻗을 길이 줄어든다 느껴지고, 숨이 차오르는 것은 나뿐인 걸까. 나는 무엇을 위해 이 탑을 쌓고 있었나.
밑도 끝도 없이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나의 고백에, 남편은 내가 뺀 조각 중 하나를 집어 꼭대기에 과감히 세운다. 항상 안정을 추구해 기본 형태로만 쌓기를 반복하던 나의 젠가. 생경한 모습에 나는 잠시 탑을 응시했다.
“너무 잘하려고 생각하지 말자. 인생이 꼭 잘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
그는 일어나 창문을 연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 유리창을 통과해 들어오는 빛이 뜨겁다.
“완벽한 사람, 잘하는 사람만 세상에 있다면, 세상이 너무 재미없어. 그냥 윤정이는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하고 있는 거야”
존재만으로도 의미가 될 수 있는 삶. 그게 가능한 걸까? 나는 눈을 감고, 마음 깊은 곳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남편은 얇게 깔린 감색 카펫을 딛고 일어난다. 그는 나를 한번 바라보곤 기지개를 켜며 장난스레 외친다.
"그럼 나는! 나는 공부도 사회생활도 안 하고 있는데! 나는 어떤 것 같아?!"
우리는 마주 본 채 푸하하 웃음을 터트린다. 존재만으로도 내 삶의 의미가 되는 사람. 그를 보고 있자니 의심으로 가득 찼던 허파가 천천히 풀린다. 나는 카펫 위로 우뚝 선 젠가를 손바닥으로 툭 친다. 중앙에 타격을 받은 젠가는 둔탁한 소리를 내며 무너진다. 카펫에 널브러진 나무조각을 보며 생각한다.
'안되면 어쩔 수 없지. 그럼 그냥 다시 쌓자. 아직은, 이대로도 괜찮아.'
일어나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비가 그친 하늘이 맑다. 가라앉았던 마음이 슬며시 들뜬다. 내겐 아직 많은 시간과 기회가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