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빼앗긴 세계> 를 읽고.
누구나 구글에서 검색해본 상품이 페이스북 광고나 유튜브 추천 영상에 뜨는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섬뜩하다. 우리가 흔히 ‘알고리즘’이라 우스개소리로 퉁치고 넘어가는 이면에는, 세상 모든 질문을 답하기 위한 철학적 접근이 도사리고 있다. 똑똑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이렇게 무서워지는거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의 인공지능은 우리가 지나가듯이 검색해보는 모든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현생 인류를 하나의 생태계로 묶어냄과 동시에 예측가능한 존재로 만드려는 원대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빅테크 CEO들의 신념은 인류를 가로막는 언어, 지적재산권적 경계를 모두 허무는 것이다. 그렇게 인류가 평화 상태를 도달할 수 있다는 그런 믿음..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그리고 알고리즘은 이제 엔지니어링에 국한되지 않는다. 하나의 철학의 영역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문제는 빅테크가 민주주의 원리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사실이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금과옥조로 하는 민주주의에서 빅테크의 독점은 심각한 위협이다. 특히 지난 2016년부터 오늘날까지 빅테크 산하 소셜미디어가 보여주는 확증편향에의 의도적 무관심이 이를 입증한다. 빅테크의 독점과 알고리즘이 경제생태계를 교란하고 건전한 공론장을 붕괴시키는데, 현행법은 무기력하다. 기후위기에는 목청을 높이면서 빅테크의 원료가 되는 데이터는 속수무책으로 열어주는 모양새가 참담했다. (그린뉴딜과 디지털뉴딜을 한 데 묶어 외치는 문재인정부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우리나라의 대표적 빅테크 플랫폼인 네이버가 대표이사진을 교체했다. 직전까지 기자 출신 임원들을 선임했던 것과 달리 모두 법률가 출신들로 대체되었다. 항간에는 더불어민주당이 정권 연장을 하게 되면 네이버의 뉴스 추천 알고리즘과 전자상거래 독점을 손볼 것에 대한 대비책이라는 말이 돌았다. (설마 이들도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으로 민주당의 정권연장을 예측한건가..?)
미국도 마찬가지다. 바이든 행정부와 집권 민주당은 구글과 페이스북을 단순히 반독점법 위반 사례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제 빅테크를 증오와 폭력의 확증편향을 그대로 방치하고 가짜뉴스 등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허무는 주범으로 상정하고 있다. 빅테크는 이제 독점 등 경제법의 영역이 아니라 헌법의 영역으로 옮겨왔다.
그렇다면 해법은? 이들 빅테크를 기업체가 아니라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처럼 민주정의 행위주체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라야 빅테크에도 견제와 균형의 법리를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들의 영향력은 3부에 버금가는 실정에 이르렀다.
그리고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종이책과 저널리즘의 역할이다. 고품질의 저널리즘과 논평 그리고 저술은 인류가 끝까지 붙들고 가야할 목표점이다. 그리고 저널리즘과 책의 역할이 사람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라면, 이 책이 바로 그러하다. 읽고 나니까 지금 내 앞에서 돌아가는 세상살이가 다르게 보인다. 정말 강추하는 책이다.
책은 책을 부른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빅테크 분리 및 반독점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투입된 팀 우(Tim Wu)의 <빅 니스>, 데이비드 색스의 <아날로그의 반격>, 김만권의 <새로운 가난이 온다>를 새롭게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