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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링고 Aug 19. 2024

별거 10년째(6)

별거를 결정한 날...누가 누구의 노예라는 거지?

시간이 흘러...나와 아이들이 한국으로 귀국하기 한 달 전이 되었다.

나는 짐도 부치고 아이들의 학교에도 귀국을 알리며 이곳저곳에 인사를 드릴 때였다.


남편이 일본생활을 마무리하는 여행을 하자며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로 놀러 왔다.


사실 우리는 몇 개월동안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귀국 후의 생활에 대해...어디서 살지, 무슨 일을 할지, 아이들의 교육은 어떻게 할지등의 이야기부터

부모님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할지, 부부로서 어떤 관계를 원하는지, 신앙생활은 어떻게 할지 등등

중요하고 어려운 이야기들을 나누다보니 서로 언성이 높아지는 일이 잦았다. 특히 귀국 후에 진짜 파트너가 되고 싶었던 나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생각을 분명히 말하고 남편의 대답을 끈질기게 요구하고, 이야기를 나누기를 원했다. 우리는 열렬히 대립하고 협상을 계속해 왔기에 내게 그 여행은 협상의 뒤풀이? 같은 느낌이었다.


여행의 마지막 날 그는 장거리 운전으로 피곤해하면서도 기분 좋게 식탁에 둘러앉아 같이 맥주를 마셨다.

나는 맥주 한 캔을(다 마시지 못함), 그는 다섯 캔 정도를 마셨다.


우리는 <곧 귀국이네, 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났네>하며 자연스럽게 귀국 후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집이야기... 나의 취직이야기(나는 학위 취득을 미루고 일본 오기 전 다니던 회사에 다시 입사하기로 되어 있었다)... 가사분담 이야기... 정말 특별할 것 없는(?) 이미 몇 개월간의 협상 중에 몇 번이고 나눴던 이야기들이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 가운데 그의 얼굴이 점점 굳어지며 내 말을 끊으며 공격적인 말투로

 그건 아니지, 그건 말이 안 되지! 아니지, 아니지!

를 연발하기 시작했다.


그는 술에 취해 있었기도 했고, 흥분한 상태여서 말의 앞뒤가 맞지 않았다.

나는 피하지 않고 그의 말은 무슨 말인지 되묻거나, 지금 한 말은 이해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의 부정적인 말, 자신을 우위에 두려하는 태도, 나를 좌지우지하려는 논리... 그동안 사랑해서, 가족이라서, 또 두렵고 어색해서 흐지부지 넘겨왔던 부분을... 더이상 묵인하지 않고 싶었다.

그는 점점 목소리가 높아졌고... 나는 말 안 되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은 너라고 차갑게 쏘아붙였다.

우리의 말다툼은 10분 정도 지속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들이 잘 시간이었고 나는 너무 어이가 없고 더 이야기해서 상처받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아이들을 재우러 들어가고 그는 화를 식히러 현관 밖으로 나갔다.

나는 아이들을 재운 후 옆 방에 들어가 핸드폰으로 드라마를 켰다.

곧 그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몇십 초 지났을까 이상한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보니 그가 내가 있는 방의 미닫이 문을 열고 문 앞에서 나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끼고 있던 이어폰을 뺐다. 그는 어색하게 <아까는 내가 미안하다>라고 사과를 해 왔다. 나는 작은 목소리로  <알겠어... 그런데 지금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드라마 보는 중이었어>라고 조용히 대답했다. 우리 사이엔 2,3초 정도의 정적이 있은 후 그가 내게 소리쳤다.


그렇게 할 거면 그만 끝내자! 여기서 끝내자! 근데 일단 아이들부터 처리하고!!!


그는 방의 미닫이 문을 쾅하고 세차게 닫은 후 아이들이 자고 있던 건너편 방으로 한걸음에 가는 것이었다.


나는 정말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  <일단 아이들부터 처리하고!!!>라는 말이 도대체 무슨 말이었을까


무슨 말이지? 

무슨 의미지?

무엇을 한다는 말이지?


하지만 나는 바로 정신을 차리고 용수철처럼 튀어올라 그를 따라갔다.

무슨 짓을 하는 거야!!!!!


그는 문 앞에서 나를 못 들어오게 밀치고 문을 거칠게 닫았다.


딸은 깨어나 실랑이를 벌이는 남편을 보며 울고 있고

아들은 그의 발에 밟힐 만한 가까운 거리에서 자고 있었다.


나는 아들이 밟힐 것 같아서 필사적으로 그에게 밀려 뒤로 자빠져도 벌떡 일어나 그를 뚫고 아들을 잡아당겼다. 정말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것 같았다.


딸이 울면서 그에게 말했다. <아빠, 어른이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나는 딸과 아들과 옆방으로 도망가 미닫이 문이 열리지 않게 온몸으로 문을 막았다.

다행히 그는 두 개의 방 가운데 있던 작은 소파에 털썩 주저앉더니 자신의 괴로움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나는 문을 붙들고 있으면서 그가 술에 취해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는 수십 번 이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내가 개돼지냐, 내가 노예냐... 내가 평생 너의 개돼지로, 노예로 살아야 하느냐

처음에 나는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나는 몇 십분 동안 계속되는 술주정 속의 진심을 듣는 가운데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몇 개월 간의 치열한 협상을 통해

귀국 후의 일들에 대한 나의 몇 가지 제안에 대해 수용한 줄 알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고…

나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이런 게 정말 동상이몽이구나. 

혼자서 5년간 그 어린 아이들을 외국에서 홀로 키우며... 월평균 100만원 남짓하게 보내주는 돈으로 생활한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장학금 받고 아르바이트하며 죽도록 공부해왔는데... 자신은 해보고 싶은 사업 여기 저기 돈 끌어다가 해 놓고... 누가 누구의 개돼지며 노예란 말인가. 내가 언제 그를 개돼지, 노예로 취급했다는 말이야?

나는 충격으로 정신이 아득해졌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만히 나와 그를... 그리고 아이들에 대해 생각했다.


이대로 귀국해서 내 제안대로 더이상 새로운 사업을 하지 않고(시댁 지원을 받지 않고)월셋집에서 살며 나랑 맞벌이하면서 육아와 가사의 분담을 요구하면  그는 개돼지, 노예라는 피해의식 속에 다툼이 끊이지 않겠지…

나는 나대로 변화된 가족관과 부부관에 따라 남편에게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고 협상을 요구하겠지...


특히, 나는 중병이나 장애가 이유가 아닌 다음에야 두 번 다시 부모님돈을 받으며 생활하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은 시댁의 며느리로 지내면서 가족 안에서조차 경제력이 권력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껴왔다. 친정가족에게도 너무 많은 지원과 배려를 받아 죄송하고 마음이 불편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는 소파에서 잠이 들었는지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아이들도 다시 잠들어 있었다. 시계는 벌써 새벽 3시를 넘기고 있었다.


내가 무엇보다 간절히 바랐던 그와 내가 부부로서 동등한 관계, 파트너십을 키워나갈 수 없을 것 같다는 사실이 너무나 비참했다... 

별거라는 선택에 책임을 질 각오가 되어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책임을 질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각오가 서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 새벽에 조용히 아이들을 깨워 그가 자는 틈을 타 교회로 도망쳤다. 다음날 아침 그는 귀국했다.

어제는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미안하다.

는 짧은 카톡을 남긴 채.

이런 맛있는 것을 맘편히 먹을 수 있는 날도 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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