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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j Jan 19. 2021

파리의 우범지대, 생드니에 산다는 것

01. 생드니에 처음 발을 들인 날

프랑스에 유학오기 전부터 각종 한인 커뮤니티에서 익히 들어왔던 우범지대로 악명 높은 파리 북쪽에 위치한 생드니(Saint-Denis). 


서울로 따지자면 경기도에 해당되는, 파리를 동그랗게 둘러싼 일드프랑스 지역을 통틀어서 범죄율이 가장 높고 위험해서 웬만해서는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는 생드니로 이사를 왔다. 특히나 안전과 치안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절대로 발조차도 들여서는 안되는 지역중에 하나다. 


내가 그런 생드니에 이사를 오게되다니, 나도 내가 93지역 우편번호(파리는 75, 생드니의 우편번호는 93으로 시작된다.)를 가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파리의 국제 연극학교를 졸업하고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계속 작업을 이어나가기 위해 당분간 프랑스에 남기로 마음을 먹었고 2년간 지낸 국제 기숙사에서 나와 좀 더 자유롭고 탁트인 환경에서 살기 위해 집을 알아보고 있었다. 마침 같이 졸업한 친구들도 집 계약이 끝나가던 참이라 함께 집을 찾아 살면 어떠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집세가 비싼 파리에서는 여러 사람이 한 집에 같이 살면서 월세를 나눠내는 꼴로꺄시옹(collocation)이 많다. 우리 모두 파리의 비좁은 스튜디오 생활에 지쳐있었던 터라 조금 외곽으로 가더라도 마당이 있고 넓은 공간을 쓸 수 있는 집으로 이사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던 와중 친구 하나가 괜찮은 집을 발견했고, 되도록 빨리 집을 보러가기로 했다. 집주인이 찍어둔 비디오 속 집은 지하층까지 총 세개의 층이 있는 예쁜 집이었고 넓은 마당이 있어 이상적이었다. 심지어 연습실로 쓸 수 있는 공간까지 있어서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았다. 


"집주인이 다른 사람과 계약하기 전에 빨리 인터뷰를 해버리자." 

(프랑스에서 월세를 살려면 인터뷰를 통해 높은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집구하는것마저 면접이라니..!) 

"그래, 당장 약속잡고 찾아가자. 그래서 집이 어디있는데?" 

"... 생드니!" 


생드니라는 세글자가 나를 충격에 빠뜨렸다. 오만가지 범죄에 노출되는 상상이 머리를 스쳤고 정말 괜찮을까 하는 의심을 지워버릴 수 없었다. 하지만 집이 너무 마음에 들었고, 또 막상 가보면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일단 약속을 잡았다. 


지하철 13호선의 끝, 생드니 파리 8대학 역에 내려 집까지 지도를 보며 걸었다. 원래 우울하고 어두운 파리의 겨울 날씨도 괜히 생드니여서 더 우중충하게 보였다. 친구들과 함께였지만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고 혹시 소매치기라도 당할까 주머니에 손을 꼭 넣은채 걸었다. 그래도 부족해서 장보러 가는 주민에게 이 동네 치안에 대해서 물어보기도 했다. 생드니 중심은 조금 다이나믹할지 몰라도 여긴 대학주변이라 조용하고 안전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혹시나 이 지역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그건 여기 사는 사람들 보다도 경찰의 과잉진압 때문일 확률이 높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가 질문을 했던 사람은 프랑스인 중년 남성이었고, 그러니깐 나와는 상황이 많이 다를거야라는 생각에 끝까지 경계심을 놓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낮과 밤의 상황은 또 많이 다를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걱정들은 집을 보자마자 눈녹듯이 사라졌다. 너무 예쁜 집이었다. 넓은 정원에는 빨간 올드카가 세워져 있었고 그 옆으로는 높은 그네가 있었다. 불교신자인 집주인의 불상들이 모여있는 곳에는 넓은 식사용 테이블이 있었다. 날이 좋아지면 바베큐를 할 수 있게 되어있다. 집 내부에는 큰 거실과 넓은 부엌(우리 모두 2년간 간이 부엌에 지쳐있었다.)이 있었고, 각자 사용할 수 있는 방이 하나씩 있었다. 정말이지 완벽한 집이었다. 위치가 생드니라는 것이 마음에 '조금' 걸리지만 나의 주 이동수단은 자전거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예쁜 집이 모든 위험 부담을 상쇄시키기 시작했다. 


생드니의 한 골목


생드니에서의 생활은 지난 2년간의 파리생활과는 또 다른 삶의 경험을 축적시켜줄거라 믿는다. 어디서나 그랬든 좋은일도 힘든일도 생기겠지만 이 집이 우리를 위로해줄 거란 막연한 기대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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