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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j Jan 25. 2021

파리의 우범지대, 생드니에 산다는 것

02. 어른의 일

두 번째로 집을 보러 간 날에는 파리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출발했다. 아무래도 파리에 자주 왔다 갔다 할 예정이기 때문에 집까지 가는 길이 심한 언덕이거나 위험하면 이 집에서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이야말로 그걸 실험해 볼 좋은 기회였다.


학교 다닐 때도 30분 정도 자전거를 타고 등하교를 했었기에 자전거를 오래 타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었지만 아무래도 생드니로 가는 길은 센 강, 노트르담 대성당 등이 있던 등굣길보다는 덜 예뻐서 조금 지루하게 느껴졌다. 동네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괜히 사람들이 나만 쳐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심한 언덕도, 자전거 타기에 어려운 오래된 길도 없어서 무사히 집까지 올 수 있었다. 두 번째 날에는 가계약이 완료된 상태라 집주인에게 집에 대한 자세한 설명들을 들었다. 난방 사용법이라던지 문을 어떻게 걸어 잠그는지 등등에 대한 것 말이다. 사실 가계약을 하기까지 에피소드들이 있었다.


우리 다섯 명 모두 부동산 계약이 처음인 데다가 우리 중 한 친구는 아직 자기 나라에서 프랑스로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우리끼리 치러야 할지 정말 많았다. 특히 그나마 우리 중에 프랑스어를 하는 게 나라서 이번 기회에 부동산, 집 보험, 세금 관련한 일을 정말 많이 치렀다. 프랑스에 산다면 언젠가는 한 번쯤 치러야 했던 일들이었는데, 그동안 기숙사에 살면서 잊고 살았던 것들이다.


우선 계약서를 쓰는 것부터가 넘어야 할 첫 번째이자 아주 큰 산이었다. 2년 동안 여기서 살면서 프랑스어가 꽤나 늘었다고 생각했지만 계약서를 읽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구글 번역기를 옆에 두고 해독하듯이 계약서를 읽었다. 구글 번역기가 제대로 번역해내지 못하는 문장들은 주변 프랑스인 친구들이게 부탁해 두세 번 확인을 했다. 그 과정에서 하마 타면 우리에게 불리한 내용에 사인을 할 뻔한 걸 바로잡기도 했다. 그러면서 부동산과 집주인과의 사이가 어색해지는 걱정을 하는 것도 스트레스였다. 


그래도 두 번째 집을 방문할 때 슬쩍 혹시 내가 너무 귀찮게 하지는 않았는지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꼼꼼하게 확인하는 게 자기한테도 좋다고 안심시켰다. 이런 계약서에 대해서 사적인 감정을 녹여내면 나중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니 확실히 해두자는, 그리고 상대방도 생각보다 이런 공적인 일로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계약을 마치고 나서는 보험과 인터넷 관련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집보험을 들 때도 보험사 별로 조항을 꼼꼼히 따져서 손해를 보지 않아야 했다. 모든 보험 조항들을 읽는다는 게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새삼 느끼게 됐다. 하지만 덕분에 다음번에도 같은 일을 해야 할 상황이 생긴다면 조금 더 쉽게 해낼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렇게 한 달가량을 서류 작업에만 매진하면서 집 계약을 마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점들이 많아서 입주 당일에 부동산 직원이 우리 대신에 보험회사와 가스, 전기 회사에 전화를 하면서 모든 것을 확실히 해주었다. 좋은 사람을 만나서 다행이다. 프랑스에서는 입주 당일에 집주인 혹은 부동산 직원과 모든 가구와 집의 상태를 함께 체크하면서 나중에 벌어질 고장 및 수리에 대비하는 절차인 에따 데리우(Etat des lieux)를 한다. 큰 집이고 우리는 모든 가구가 이미 갖춰져 있는 집으로 계약을 했기 때문에 확인할 것들이 많아서 그 과정만 두 시간은 넘게 한 것 같다. 다행히 모두가 카메라 한 대씩 가지고 있는 세상이라 모든 것을 수기로 작성하지 않아도 됐다. 



이제 이 예쁜 집에서 창의적인 영감들을 마구 얻으며 살 수 있는 것이다.

부동산 직원에게 키를 하나씩 받은 우리들은 부푼 가슴을 안고 짐들을 옮기기 위해 원래 살던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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