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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오 Jul 06. 2024

그렇게 할 거면 때려치워!

오빠야 나는 아프고 싶어서 아프뉘?

최근 4개월 동안 급성편도염이 두 번이나 찾아왔다.

살면서 가장 큰 고통은 아이를 낳았을 때. 죽지 않는 거에 감사했으며 내가 그동안 아팠다고 느꼈던 통증들은 출산 전과 후로 나뉘게 되었다.

그런데 이놈의 편도염이란 질병은 나에게 새로운 고통의 문을 열어주었다.

그놈이 찾아오기 전부터 목이 좀 까슬까슬했으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어갔다.

그러다 토요일 밤에서 일요일 새벽으로 넘어가는 그 시각.

나는 눈을 번쩍 뜨고야 말았다. 침을 삼키는데 그 고통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설마.. 설마 그놈이 또 온 거야???? 회복한 지 이제 한 달 지났는데 또 재발했다고???

열은 39.6도.... 오들오들 한 여름에 옷장에 가서 이불을 꺼내 들고 덮었다.

아이들은 다행히 옆에서 쌔근쌔근 잘 자고 있다.

주방으로 기어가서 해열진통제를 하나 꺼내 겨우 삼켰다. 하필 일요일.. 오늘 하루만 버티자..

일요일을 어찌어찌 동공이 풀린 채로 먹지도 못하고 타이레놀 6알로 겨우 버티며 월요일 9시가 되기도 전에 동네 이비인후과에 갔다.

시체 같은 내 얼굴을 간호사 선생님들이 안쓰럽게 쳐다봤지만 그녀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할 힘도 없었다.


선생님: 아이고 또 많이 부었네요.. 수액 하나 맞고 갈래요?

나: 끄덕끄덕..


평소의 나라면 수액 비싸다고 안 맞을 텐데 그날은 진심 살고 싶어서 맞았다.

물도 못 마시는데 이거라도 맞고 기운 좀 회복할 수 있다면 7만 원이 문제랴..

그렇게 한 이틀을 여기가 지옥이구나 싶은 고통을 맛보고 나서야 증상은 조금씩 회복되어 갔다.

그러는 사이 친정엄마는 우리 집에 왔다 갔다 하면서 나를 안쓰럽게 쳐다봤고,

내가 아픈 소식은 자연스레 오빠한테도 흘러갔나 보다.


그저껜가 전화가 온 오빠는 처음에는 내 안부를 묻고 걱정했지만 진심은 그다음에 툭 튀어나왔다.

"야 너 그거 때려치워. 그렇게 스트레스 받으면서 하지 마."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비즈니스 PT를 말하는 거였다. 수익은 아직 낼 수 없는 짠하디 짠한 내 유튜브 도전.

그런데 나는 진심 "스트레스"까지 받아 가면서 이 일을 하고 있지는 않다.

솔직히 못 하는 나 자신이 야속하고 다른 잘하는 회원들 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조급 해지는 건 사실이지만.

냉정하게 실력차이 아닌가? 인정해야지. 그리고 더 노력해야지.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내 체력이 그걸 못 쫓아가고 있다는 거.

정말 24시간을 쪼개서 살고 있다 싶을 정도로 이 수업을 시작하고 나서 내 삶은 나를 돌볼 겨를이 '더' 없어졌다. 안 그래도 허덕이는 육아와 살림에 추가로 인강 듣고 유튜브 제작까지 해야 하는 현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길이기에 힘들어도 이겨내자 이 생각만 하고 달려왔는데..

시작한 지 4개월 동안 크게 3번이나 아팠다. 그중 두 번은 급성편도염이 너무 심하게 와서 살면서 이런 통증이라면 수술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그래서 지금 편도절제수술을 하기로 마음먹은 상태이다..)


나도 잘하고 싶다. 아프지 않고 살림도 육아도 일도 기깔나게 잘하고 싶다.

하지만 잘하지 못하더라도 지금 노력하는 이 과정만으로도 나는 꽤 괜찮은 사람 아닌가?

오빠도 나를 걱정하는 마음에 속상해서 툭 내뱉었겠지..

가족끼리는 사랑하는 마음에 노필터로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를 낸다.

시간이 지나면 잊히는 생채기지만 아픈 몸을 겨우 회복한 나로서도 서운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한평생 살다가 죽는 것도 큰 복이겠구나 싶다.

요즘 운동 좀 한다고 깝죽거리더니 또 이렇게 아파버린 내 비리비리 싸는 몸이여~~ 겨울까지는 아프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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