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내시경 다신 안 하고 싶습니다.

그래도 40대 넘으셨다면 해보시는 걸로..

by 환오

대장내시경을 왜 하게 됐냐 말하기 전에 내 지병을 하나 커밍아웃 하려 한다.

왜 이 병은 말하는 사람이 머뭇머뭇거리게 되는 걸까?

아픈 건 죄가 아니고, 부끄러워할 일도 아닌데 말이다.

이 병은 우리나라 성인 4명 중 1명은 수술을 선택할 정도로 흔하기도 하고, 죽기 전까지 관리해야 하는 딱히 완치는 없는 병이다. 한마디로 관리를 안 하면 언제든 재발이 가능한 애물딱지 같은 병.


그 이름하여 바로 '치질'.

그래, 나는 이 병명을 지금 내 입으로 말하는데 전혀 한 톨의 부끄러움도 느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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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긴 세월이 흘렀다는 거겠지.

결혼 전 '치열'수술을 하고 남편에게도 한동안 비밀에 부쳐졌던 그 병은 자연스럽게 한 집에 살면서 오픈되었다.


정장에 뾰족구두를 즐겨 신던 오피스걸 시절, 수술은 설날 연휴로 잡게 되었다.

사장실에 들어가 목소리를 한 톤 줄여 '저 치질수술하는 거 직원들에게 비밀로 해주세요'라며 사장의 입단속까지 잊지 않았다. (그때 사장님의 응?이라는 표정이 기억난다. 정작 상대방은 아무 관심도 없는 거 다 아시죠?)

수술 후 내 응꼬는 한동안 행복한 생활을 지속했다.

그러다 두 번의 자연분만으로 큰 위기에 봉착했으나 나는 이 병을 누구보다 잘 아는 '반의사'이기에 스무스하게 잘 넘어갔었다.

생전 치질증상 한 번 없던 사촌언니도 쌍둥이를 낳고 몇 달 뒤에 바로 치질수술을 한다면 나에게 전화로 상담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 치질 이야기는 이쯤에서 그만하고..


한 달 전부터 혈변을 보기 시작했다.(솔직히 처음 봤을 때 너무 무서워서 눈을 감아버렸다.)

내 병은 내가 안다고 이거 치질 관련된 이슈다라고 단정 지었다.

그런데 한 번에서 안 끝나고 며칠에 한 번씩 이어지는 출혈이 점점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무서워서 남편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다.

그래도 내가 의사는 아닌데 병원에 한 번 가야 하지 않나?

항문외과? 내과? 어디를 가지?

고민하다가 수술한 항문외과 병원은 차로 15분 거리라 귀찮기도 하고, 가면 다짜고짜 아픈 그 부위부터 찔러대는 내시경카메라가 소름 돋게 싫었다.

일단 내과에 가서 변비약을 처방받기로 계획을 세우고 집 앞 건강검진 전문 병원에 방문했다.

전문의 앞에서는 거짓말을 하면 안 되니까 그동안의 히스토리를 쫙 읊어댔다.

선생님은 내 말을 다 듣자마자,


"대장내시경 하시죠? 이건 고민할 것도 없는데?"

"네? 저 음... 아 저 치질 같은데요?"

"그게 아닐 수도 있어요"


아..... 나보다 더 단호박 같은 선생님의 의지를 꺾을 수가 없었다.

해야 한단다. 그 무시무시한 대장내시경을.


3일 전부터 씨가 있는 과일, 예를 들면 딸기나 키위 등등은 안된다. 과일은 고사하고 이틀 전부터는 뭐 흰밥, 삶은 계란 정도만 가능하다. 하루 전 오후 2시 이후로는 금식이었다. 그리고 검사 전날 저녁 6시부터 물약을 먹기 시작하면 악몽 같은 화장실 타임이 시작된다.

내 인생 두 번 경험하기 싫은 저 물약.....ㅠㅠ

거짓말이 아니라 당일 검사 전까지 화장실을 20번은 넘게 간 거 같다.

나중에는 다리가 후들거려 화장실을 겨우 기어서 나왔다.

마지막까지 깡그리 비워내고 출산 후 최저 몸무게인 49.3kg을 찍고 병원으로 향했다.

하필 월요일 11시.. 그게 제일 빠른 시간이라고 하니 10시 45분 병원에 도착해 이것저것 작성을 하고 지루한 대기시간이 이어진다.


대장내시경용 바지는 엉덩이가 뚫려 있다고 했는데, 엉덩이에 구멍이 난 게 아니라 실로 꿰매놔서 시작하기 전에 그 실을 쭉 빼면 엉덩이 부위만 보이게 되는 듯하다.

드디어 내 순서가 되고 어두운 검사실에 옆으로 누우라는 간호사 선생님의 안내를 받았다.


"저 선생님, 혹시 검사하다가 변 나오는 경우도 있나요?"

"아니요, 거의 없어요"

"아직도 속이 좀 꾸륵거려서요.."


이런 걱정을 하는 동안 어느새 담당 선생님이 오셨다.

마취주사 들어갑니다. 소리와 함께 하얀색 주사액이 내 팔의 혈관으로 주입된다.

아, 이 느낌 싫으면서 좋고 좋으면서 싫고 아프고 음.. 아.....


역시나 기억이 뚝 끊겼다.

눈을 뜨니 모든 상황은 종료. 다행히 내가 걱정하던 일은 벌어지지 않은 듯하다.

아직 마취가 덜 풀려 어지럽지만 더 누워있고 싶지가 않다.

어서 결과를 들어야만 한다!


그래서 저는 뭐 용종이라도 나온 겁니까??????


두근두근 나대는 심장을 뒤로하고 내 이름이 불렸다.

의자에 앉으니 내 대장 사진을 선생님이 보여주시면서 말씀하신다.


"깨끗하네요"


아.. 다행이다. 뭘 모르는 내가 봐도 아기처럼 뽀샤시 깨끗한 대장이다.

이걸로 며칠 동안 나를 짓눌렀던 마음의 병은 깨끗이 치료되었다.

잠시나마 상상했었다.


혈변을 자꾸 쏟아내던 일산에 사는 45세 최 모 씨는 두 아들을 키우는 평범한 주부였으나, 불행 중 다행으로 대장내시경을 통해 용종을 발견해 크게 암으로는 전이되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라고 해도 아직까지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큰 병은 걸리지 않았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얼마나 나약하던가.

교회를 안 나간 지 15년? 은 넘어가도 하느님 아버지 하면서 두 손 모아 기도를 할 때가 있다.

바로 이럴 때.

"아직은 두 아들을 키워야 하니 이 비루한 몸을 조금만 더 보살펴 주시옵소서 에이맨!"


그래서 결론은 뭐다?

몸에서 조그만 신호가 나왔을 때는 끙끙 앓지 말고 병원으로 가셔라.

결과가 그것 봐! 아니랬잖아! 이래도 가셔라.

의사도 신이 아니니 보지 않은 이상 정확한 진단은 내릴 수 없다.

이상 없다는 확인만으로 수명이 연장되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나는 한 단계 어른이 되었다.

역한 물약을 3번 먹고 장을 싹 비워낸 어른!!

대장내시경을 한 으른 말이닷 으하하하하!!!!!!!!!!

(안 하신 분들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입니다! 껄껄껄)

검사가 끝나자마자 분노의 혼밥. 스지국밥이란 걸 처음 먹어봤는데 진짜 맛있었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