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할 수 없는 우리 아이들의 현재 시간
볼것들이 차고 넘치는 지금 시대에는 극강의 '재미'요소가 빠지면 사람들의 선택에서 멀어진다.
하지만 그런 세태와는 다르게 내 안에서는 약간의 반항심리가 튀어나오곤 한다.
남들이 '재미'있다고 선택하는 그 열차에 같이 탑승하고 싶지 않은 삐뚤어진 심리 말이다. (왕사남이 1300만을 찍는 동안 내가 애정하는 배우 박정민의 '휴민트'는 200만도 채우지 못하고 손익분기점 400만 근처에도 못 간 현실에 속이 쓰려 천만돌파 영화를 보지 않은 심리이다.)
나 역시 도파민을 분출하는 자극에 약하지만 그 도파민을 넘어서서 진지하고 묵직한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이 눈에 밟힐 때가 있다.
가끔 사람들이 열광한 작품을 뒤늦게라도 정주행 해? 말아?를 고민하는 사이(오징어게임 2,3도 못 봤고 작년 봄 전국적으로 열풍을 일으킨 <폭싹 속았수다> 학씨 아저씨 연기도 못 봤더랬다.)
최근 잘 들어가지 않았던 지역 맘카페에서 우연히 본 게시글이 뇌리에 꽂혔다.
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글쓴이는 부모라면 한 번쯤 보는 걸 추천한다고 했다.
소소하게 4개의 댓글이 달려있었다.
음. 사람들이 많이 보진 않았구나.
하지만 한국에서만 외면받았지 검색해 보니 각종 시상식에서 상을 휩쓴 수작이라는 평이 많았다.
극 중 핵심 인물인 제이미 역의 오언 쿠퍼는 데뷔작인 이 작품으로 2025년 미국 에미상에서 최연소 남우조연상을 받게 되어 전 세계 주목을 끌기도 했다.
알고 보니 그 시기에 우리나라에서는 <폭싹 속았수다>가 전국적으로 열풍이라 자연스레 <소년의 시간>이 묻힌 거였다.(이 문장을 쓰면서 왕사남과 휴민트가 또 떠오른다. 사랑은 타이밍이라는데 영화도 타이밍인가 보다...)
간략하게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영국의 13살 소년이 같은 동급생인 여자 아이를 살해한 이후 소년을 중심으로 경찰의 조사와 가족의 이야기가 시간 순서대로 흘러나온다.
불편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빨려 들어가듯 집중해서 보게 된 데는 숨겨진 시각효과가 있었다.
모든 씬(Scene)을 원테이크로 찍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4편의 드라마로 구성된 이 작품은 각 회차를 한번 시작하고 끝날 때까지 컷이 없다.
카메라 한대로 인물들을 쭉 따라간다.
중간에 NG가 나면 처음부터 다시 찍어야 하는 불상사가 생긴다.
연기자들과 스텝들이 얼마나 많은 리허설을 하고 서로의 합을 맞추며 공을 들였을지 그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에 기립박수를 보내고 싶어졌다.
1화에서는 무장을 한 경찰특공대가 일반 가정집을 덮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무방비 상태에서 갑자기 벌어진 일에 일가족은 그야말로 멘붕인 상황.
게다가 경찰이 지목하는 살인 용의자는 다름 아닌 이 집안의 막내 13살 제이미였다.
제이미는 자기에게 벌어진 이 상황에 놀랜 나머지 급기야 바지에 오줌을 지리고 만다.
아버지는 아들의 옷을 갈아입히고 아이는 현행범으로 인계되어 경찰서에 구금된다.
여기서부터 나는 실제 살인 용의자로 체포된 소년이 이후 경찰서에 구금되기까지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
어떤 절차를 따르는지 제3의 눈으로 숨죽이며 조용히 따라간다.
제발 저 아이가 범인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간호사가 피를 뽑고 제이미의 맨 몸이 수색당하는 과정을 아버지는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다.
몸 안에 무기는 없는지 자해할 가능성은 없는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아이를 다루는 어른들 사이에서 제이미는 한결같이 자기가 범인이 아니라고 말한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어린 소년이 칼로 친구를 살해했다니 뭔가 착오가 있었겠지.
나 역시 제이미의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면서 아이의 편에 서게 되었다.
하지만 그 희망은 1편 마지막 CCTV화면에서 제이미가 케이티를 칼로 수차례 찌르는 장면에서 속절없이 무너지고 만다.
그 장면을 보자 제이미의 아버지와 나는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울면서 좌절하는 그는 아이에게 절규하며 물었다.
왜 그랬어? 왜 그런 거니? 대체 왜?
2편에서는 사건이 벌어진 이후 제이미가 다닌 학교를 찾아간 경찰 두 명이 학교 선생님을 따라다니며 아이들에 대한 정보를 듣는다.
카메라는 덤덤하게 학교 안 영국의 10대 청소년들의 현실이 어떠한지 여과 없이 보여준다.
학교.
그곳은 소리 없는 전쟁터였다.
연약한 초식동물은 육식동물에게 먹히는 것이 생태계의 법칙이다.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자연에서의 룰이다.
인간세상이라고 다를까?
종이 다른 것도 아닌데 우리는 같은 인간끼리 서로를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세상 속에 살고 있다.
어른보다 나이가 좀 어린아이라고 다를쏘냐.
안타깝게도 아이들 세계 역시 어른의 축소판일 뿐이다.
* 분량 조절 실패로 2화로 나눠 발행하려 합니다~~ 투비컨티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