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시간>을 통해 처음 들은 저는 파란 약을 먹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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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글에 이어 2화 입니다~~
빨간색은 '사랑해'
보라색은 '흥분돼'
노란색은 '난 관심 있는데 넌?'
분홍색은 '관심은 있지만 섹스는 안 해.'
주황색은 '괜찮을 거야.'
전부 뜻이 있어 아빠.
<소년의 시간>에서 담당 경찰인 아빠에게 말하는 애덤의 대사
애덤은 SNS에서 하트 이모티콘 색깔에도 여러 의미를 부여한다고 했다.
아이들의 세계는 어른들의 세계보다 복잡했다.
우리가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는 인스타의 이모티콘이 때로는 조롱과 경멸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인셀(Incel): '비자발적 독신주의자(Involuntary Celibate)'의 줄임말로, 성관계를 원하지만 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 남성 중심의 온라인 하위문화를 뜻합니다. 이들은 여성에 대한 혐오, 사회적 분노, 거부감 등을 드러내며 반페미니즘적 태도를 보이는 특징이 있습니다. <출처:구글>
극 중에서 갑자기 '인셀'이란 단어가 튀어나왔을 때 나는 엉뚱하게도 다단계를 떠올렸다.
인셀? 인셀덤은 원빈이 선전하는 화장품인데.. 음 그건 아닌 거 같고 뭐지?
의미를 알고 나서 저런 문화는 도대체 언제 형성이 되었던 걸까.
나는 파란 약을 선택해서 살고 있었던 걸까.
웬 파란 약 타령이냐고?
1999년도에 나온 영화 '메트릭스'에서는 빨간 약과 파란 약이 나온다.
빨간약은 고통스럽더라도 진실을 마주하는 선택을,
파란 약은 편안하고 안락한 거짓(환상) 속에 머무는 선택을 상징한다. <출처: 구글>
빨간 알약, 매너스피어, 80대 20 법칙, 도통 알 수 없는 용어들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온다.
담당 경찰관처럼 나 역시 아이들의 세계를 따라가기가 힘에 부친다.
머리에서 지진이 일어나는 듯하다.
매너스피어(Manosphere)는 남성(Man)과 영역(Sphere)의 합성어로, 남성 권리 운동, 픽업 아티스트, 안티페미니즘 등을 주장하는 온라인 블로그, 포럼, 커뮤니티의 집합체를 뜻합니다. 주로 페미니즘에 반대하고 남성성 회복을 주장하며, 극단적인 여성혐오나 성차별적 발언이 공유되는 온라인 공간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됩니다.
80대 20 법칙:상위 20%의 매력적인 남성이 여성의 80%를 차지하고, 나머지 80%의 남성은 여성에게 거절당할 운명"이라는 왜곡된 인식입니다. <출처: 구글>
제이미는 자신을 인셀이라고 칭하던 케이티를 미워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의미인즉슨 13살짜리 소년에게 넌 평생 섹스를 할 수 없을거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 분노가 도대체 어느 정도길래 살인을 저지를 수가 있었을까?
그런 제이미를 이해하기 위해서 3화는 2번 시청했다.
어쩌면 1~4화 중에 가장 핵심이 될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3화에서 심리상담가와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 제이미의 극단적인 분노가 여과 없이 표출된다.
13살 제이미 마음속에는 이성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차 있다.
자신의 못생긴 얼굴 때문에 아무도 자기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 지어버린다.
케이티가 인스타에서 인셀이라고 공론화시켰을 때 '좋아요'가 쌓여갈수록 제이미의 자존감은 더 바닥으로 쳤을 것이다.
여자인 상담사가 제이미의 마음을 가까이 건드릴수록 그에 대한 분노는 시시각각 폭탄처럼 터져 나왔다.
제이미를 연기한 오언 쿠퍼의 연기가 감히 압도적인 부분이었다.
여성과 남성. 서로에 대한 '이해' 문제는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인류가 멸망하기 전까지 계속해서 벌어지는 일이라 해도
극단적인 혐오감은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연령대가 10대의 어린아이들까지 내려왔다면 더더욱 소홀히 해서는 안될 이슈이다.
<소년의 시간>이 단순히 한 소년의 우발적인 살인이라고 치부하기에 우리 사회가 가지는 책임감을 외면할 수 없다.
제이미를 누군가 구해 줄 수는 없었을까?
제이미의 부모는 아이를 방치한 것도 아니고 학대를 한 것도 아니다.
그 누구보다 사랑으로 키웠으며, 그의 아버지는 어릴 때 아버지에게 혁대로 맞았던 기억으로
자신은 절대 아이에게 손을 대지 않겠다 다짐하던 사람이었다.
누구보다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단지 먹고 사느라 바빴을 뿐이다.
좀 더 세밀하게 아이를 들여다보지 못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어느 선까지 아이를 케어해야 하는 것인가?
24시간 내내 아이가 인터넷에 무엇을 검색하는지, 포르노 사이트는 들어가지 않는지, 잔인한 폭력물은 보지는 않는지 딱풀처럼 붙어서 감시라도 해야 한단 말인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거니와 아이를 키워본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적절한 관심과 케어가 과하지 않게 버물어져야 부모 자식 간의 관계가 깨지지 않는다는 걸.
숨 막힐 정도로 가까워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멀리 방치해서도 안된다.
여느 인간관계처럼 '적당한' 선이라는 게 존재해야 한단 말이다.
내가 중2를 보냈던 1995년도에도 우리만의 은어는 존재했다.
삐삐로 486은 사랑해. 8282는 빨리빨리.(이 정도밖에 기억에 나질 않는다)
그나마 반에서 삐삐를 가진 친구들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나 역시 삐삐는 없었다.
2026년의 10대들은 SNS로 또 다른 형태의 또래문화가 생겼다.
케이티는 인스타에 10대들만 아는 이모티콘으로 제이미를 깎아내렸다.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었고 그 댓글에 '좋아요'가 많이 찍히면서 제이미는 점점 더 자기혐오에 빠지게 되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살인'은 결코 용납될 수 있는 범죄가 아니다.
제이미는 케이티의 미래를 송두리째 앗아갔으며
그녀의 부모에게는 평생 지울 수 없는 고통을 심어줬다.
영국이나 한국이나 지금 전 세계적으로 아이들에게 SNS문화가 위험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실시간으로 변하는 AI시대, 오프라인 소통보다 SNS가 편하다는 아이들.
심지어 약속 장소에서도 DM으로 서로에게 위치를 물어보고 전화는 하지 않는다.
뭐, 연락이야 그렇다 쳐도 교묘하게 온라인상에서 지속적인 괴롭힘이 있다면 이 문제를 우리들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오죽하면 초등학교에서 단톡방을 금지한다는 공문이 주기적으로 올라올까 싶다.
4편 마지막 엔딩에서 제이미 아버지가 제이미가 누워있던 침대에서 인형을 만지고 통곡하는 모습은 같은 부모로서 그 고통이 절절히 전해져 왔다.
나라면, 내가 제이미의 엄마라면.. 나는 이 상황을 견딜 수 있을까.
보고 나서 며칠 동안 머릿속에 제이미가 떠나지 않았다.
마음이 더 침통한 건 나 역시 해결방법을 모르겠다는 것이다.
<소년의 시간>은 시한폭탄 같은 시기를 보내는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많은 생각을 남기게 해 준 작품이다.
제이미, 너는 못 생기지 않았어.
너는 그 누구보다 빛나고 있는 사람이야.
다른 누군가가 너를 폄하해도 그걸 받지 않을 선택의 힘은 오로지 너에게 있어.
그걸 꼭 기억하고 살아야 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