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도리당하는 8살 초딩맘 계시나요?

저만 힘든 거 아니라고 해주세요 제에발.

by 환오

꼬물이가 언제 커서 학교를 가나 싶었는데 진짜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지난주, 둘째가 3월 3일 삼겹살데이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형아가 입학식날 메었던 가방을 메고(초등학생 가방이 비싸기도 하고 핑계를 대자면 지구가 아파하기 때문에 재활용이 가능한 물건은 가급적 사질 않고 있다.) 다이소표 실내화 주머니를 들고(이것 역시 몇 년 전에 큰아이가 학교에서 실내화 주머니를 놓고 와서 급하게 사두고 신발장에 모셔둔 아이템) 아장아장이 아니라 깡충깡충 내 보폭에 맞춰 투스텝으로 뛰면서 걸어간다.


올케 언니는 입학선물로 새 가방을 사주지 않는 나에게 지구 혼자 지킬 거냐며 돈을 보내주었지만
지구에 대한 내 마음은 진지한 궁서체이다.
형제이다 보니 둘째에게 '새것'을 사준 기억이 '거의' 없다.
맘카페에서 형제 어디까지 물려 입혀요 라는 누군가의 글에' '인간적으로 팬티는 사줍시다'라는 댓글을 보고 뿜은 적이 있었는데 나는 팬티까지도 물려 입히는 징글징글한 엄마였다.


그래도 형아의 모든 것을 물려받으면서 아직까지 큰 반항(?) 없이

잘 따라와 주고 있는 둘째에게 고마움을 느끼려던 찰나.

얼마 전부터 지하철 도면을 출력해 접는 재미에 빠지더니 자기도 노트북 한대를 사 달라며 몇 년 치 묵은 서러움을 한방에 날리려나 간담이 서늘하고 뒷목이 뻣뻣해지고 있다.


학교에서 40분 수업시간 동안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면 안 되는 것, 쉬는 마려워도 쉬는 시간에 가야 하는 것, 신발은 앉아서 벗는 게 아니라 서서 갈아 신는 것.. 아이한테는 지켜야 할 규칙들이 많았다.


그래서였을까.
수요일은 첫째의 언어치료가 있는 날이라 친정엄마를 호출하고 안심했는데...
1시간도 넘기기 전에 전화벨이 울렸다.
요즘 한창 지하철에 꽂힌 아이가 노트북 사용을 모르는 외할머니에게 단단히 뿔이 났나 보다.
그리고 그에 대한 화풀이는 나에게로 돌아왔다.
생전 들어보지 못한 고성의 찢어지는 울음소리가 핸드폰 너머로 귀에 꽂혔다.


그 순간 느낌이 왔다.
이제 학교간지 이틀째. 하교하자마자 안녕을 고하고 형이랑 사라진 나에게 화가 났구나.
수업이 끝나고 부랴부랴 집에 갔더니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얼굴로 나를 원망하며 부르고 있었다.

옆에 있었어야지, 엄마 어디 갔냐며 누우란다.

그래, 네가 누우라면 누워야지. 쇤네 모드로 돌입해서 아이가 원하는 대로 몸을 내어주었다.
엄마 냄새가 맡고 싶었던 아이는 곧 내 품 안에서 스르륵 잠이 들었다.


정신없이 한주가 지나가고 이번 주에도 반복되는 '결코' 반갑지 않은 낮 1시 30분.

현관문을 열기 전에 숨을 고른다.


"아, 튼튼이 데리러 가는 발이 왜 이렇게 무겁지?"


나도 모르게 필터링 없이 튀어나와 버린 진심.
남편은 썩소를 날리며 "그렇게 물고 빨고 할 땐 언제고 왜?" 고소하다는 듯이 꽈배기처럼 비꼰다.
평소 같았으면 가자미 눈으로 맞받아쳤겠지만 이젠 그럴 힘도 없다.

그래도 이번 주까지만 참으면 다음 주에는 내 시간을 좀 더 확보할 수 있다.

3월 둘째 주까지는 1시 40분 귀가, 셋째 주부터는 월수 2시 30분, 화목금은 3시 20분 귀가이다.

늘봄이라는 제도가 생겨 학교에서는 무상으로 1, 2학년 아이들은 정규수업이 끝나고 1~2시간 더 봐준다.

1월 초 신청기한을 놓쳐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줄 알았는데 늦게 제출한 사람들까지 모두 넣어준다는 소식에 그야말로 '하나님 감사합니다'가 입에서 절로 나왔다.(교회 안 나간 지 10년이 넘어가지만 나도 모르게 육성으로 터졌다.)


월요일만 빼고 주 6일 아파트 헬스장에 출근도장을 찍던 루틴도 일주일은 결석으로 채워졌다.
짧아진 개인시간만큼 운동에 할애할 시간은 줄어들었다.
뛰어야 사는 여자라고 가소롭게 글까지 써놓을 땐 언제고 나 죽겠네를 연발하며 에너지를 비축했다.

https://brunch.co.kr/@yjchoichoi/273
이번 주 목요일, 일주일 만에 운동을 나가고 몸의 근육 세포 하나하나를 깨우면서 다시 한번 깨달았다.

40대 중반이 된 여자사람에게 운동은 선택이 아니고 필수라고.

운동처럼 꽂혀서 매일같이 글을 올렸던 2025년 1/4분기와 다르게,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올리자며 목표를 심히 낮췄건만

둘째 초등학생 입학과 맞물려 자연스럽게 못 지키고 있다.


아직 나에게 '글쓰기'는 수면욕과 식욕처럼 되지는 않는다.
인간이 살기 위해서 꼭 해야 하는 행위.

그 행위 중에 하나가 '글쓰기'가 되려면 너무 자신을 몰아붙이지도,

그렇다고 너무 느슨하게 고삐가 풀려서도 안됨을 머리로는 알고 있다.


하지만 노트북을 켜고 타닥타닥 치는 글자들의 장단맞춤을 꾸준히 지속하려면 약간의 강제성도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이 글 역시 몇 주 만에 올리려니 한없이 부끄럽기 그지없는 -남들은 궁금하지도 않은- 개인사에 불과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고 있다.

8살 신입 초딩이에게 잡도리를 당하며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대한민국의 또 다른 '엄마'에게 이 글이 닿길 바라면서 말이다.

당신만 힘든 게 아니라는 작은 위로와 함께.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