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파 후기'라고 쓰고 '사랑'이라고 읽는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뭉클함.

by 환오

결국 '사랑'이었다.

삶을 지속하게 만드는 힘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아이를 낳고 알게 되었다.

너를 만나려고 내가 지금까지 살고 있었구나.

2015년 7월 22일 오후 12시 33분.

2019년 5월 22일 오후 4시 13분.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벅찬 감동과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는 묵직한 책임감이 더해져

더 이상 죽고 싶은 생각은 못하겠구나 싶었다.


첫 아이를 낳고 11년이 흘렀다.

강산이 한 번 변했고 3달에 한번 새치염색을 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흰머리가 느는 동안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2026년 1월 30일 오후 2시 30분 장소는 역삼역 GS아트센터.

내 인생에 세 번째로 '번쩍'하는 찌릿한 감동을 받은 날을 기록해야만 했고

2주가 넘어가는 동안 이 글을 붙잡고 낑낑대고 있었다.

부족한 글솜씨와 엉성한 문장력으로는 이 벅찬 마음을 온전히 옮겨낼 재간이 없었다.

차라리 브런치에 올리지 말고 일기장에 숨은 기록으로 남길까.

수많은 생각이 오고 갔지만 마음을 고쳐 먹었다.

나는 신이 허락한 프로'작가'가 아니다.

엉성한 게 당연하지. 부족하면 어때?

그것도 '나'인데.


역삼역은 남편과의 신혼 때 추억이 한가득 묻은 동네이다.

당시 칼퇴가 가능했던 중소소소소소기업에 다녔던 나와 달리, 야근이 잦았던 남편을 만나기 위해 2호선 초록색 지하철을 타고- 남편이 아니었음 내리지 않았을 전철역- '역삼역'에 내린다.

회색빛 빌딩 숲은 하얀 셔츠에 회색 정장을 '세트'로 맞춰 입은 남자들로 가득했다.


아이를 갖기 전 남편과 GS아트센터에서 딱 한 번 뮤지컬을 본 적이 있다.

솔직히 내용은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당시에도 큰 감흥이 없..)

10여 년 만에 그 장소를 혼자 찾아갔다.

남편은 더 이상 그 회사에 다니지 않기에 남편이 없는 빌딩에 공연장을 찾은 사람들로 실로 오랜만에 인파 속에 파묻혀 봤다.


그렇다.

나는 작년 하반기부터 덕질을 시작한 박정민 배우를 보러 서울 나들이를 감행한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목적은 뒤늦게 시작한 덕질이 인생을 얼마나 아름답게 해 주는지 그 이유를 남기고 싶어서다.


그에게 입덕한 계기는 작년에 혼영으로 본 영화 '얼굴'때문이다.

https://brunch.co.kr/@yjchoichoi/261

그러다 연말 청룡시상식에서 화사의 굿굿바이로 온 국민이 박정민에 열광하게 되었다.

그를 몰랐던 사람들도 시상식 영상의 무한루프에 못 나오고 있다며 여기저기서 행복한 비명이 쏟아졌다.

https://brunch.co.kr/@yjchoichoi/269

역시 될 사람은 된다. 언젠가는.

노력이라는 디폴트 값에 소위 '행운'이 곁들여지면 진흙 속의 진주는 세상에 빛을 보게 되는 법.

마침 그가 주인공으로 하는 '라이프 오프 파이'라는 연극이 GS아트센터에서 진행 중이었고 피켓팅(피 터지는 티켓팅)에 성공했다.


'라오파(라이프 오브 파이)' 후기에 대한 글을 써야지 했는데 쓰다 보니 '사랑'이 튀어나왔고,

내 인생이 곁들여져 글이 꽤 씁쓸한 맛이 났다.

아, 이게 아닌데. 좀 더 순한 버전으로 써야지.

20대 시궁창에 빠졌던 연애 이야기는 빼자.


그날 눈앞에서 확인한 건 한 사람의 '사랑'이었다.

온몸으로 열연을 펼치는 배우의 얼굴은 땀으로, 눈물로, 콧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관객들 앞에서 멋지게 보여야지 하는 생각은 1도 느껴지지 않았다.

태어나서 이런 감동을 받아본 적이 있었나?

그의 신들린 연기에 관객석은 쥐 죽은 듯 조용했고, 수백 명 사람들이 초집중하는 현상에 함께 했다.

하지만 나에게 온 감동은 단지 '박정민'배우 한 사람 때문은 아니었다.

주연배우를 받쳐주는 조연배우들의 연기의 합이 완벽했다.

동물들을 연기하는 '퍼펫티어'의 역동성은 극을 한층 더 빛나게 만들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공들여 땀 흘리며 연습했을까.

사람이 죽을 때까지 손에서 놓으면 안 되는 것.

하나를 말하라면 그것은 바로 '예술'이 아닐까 싶다.

연극, 뮤지컬, 영화, 그림, 글, 노래 등등..

어떠한 형태로든 우리는 마음을 울리는 예술적 장치들을 접하면서 살아야 한다.

유기적으로 정해진 인간의 삶을 그나마 덜 외롭게, 덜 아프게 극복해 나갈 수 있을 테니까.


p.s 그래서 말입니다.. 또 예매를 했지 말입니다?

영화 '휴민트' 주연배우들 무인(무대인사) 2월 28일 고양스타필드에 오신다네요. 꺅!

저는 또 정민님을 기다리는 동안 행복을 곱씹으면서 살아갈 수 있을 듯합니다.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질 거야" -<어린 왕자>에서 여우처럼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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