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오를 때나 잘 다듬어진 하천을 따라 걷다 보면 느닷없이 들리는 단순한 리듬에 빠르고 경쾌한 트롯메들리. 음악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려보면 어김없이 나이 든 남자가 있다. 젊은이들이 필수품처럼 귀에 꽂고 있는 이어폰이 그들에게는 딴 세상 물건인 듯 핸드폰이나 휴대용 라디오의 볼륨을 천지가 들썩이게 높인 채 듣고 있다. ‘소리라도 줄이지.’라고 생각하면서도 말은 못 하고 그저 동년배 남자로서 부끄러움을 그냥 떠안아버린다. 그렇게 아저씨, 아줌마 혹은 할아버지들의 노래로 불리던 트롯이 화려하게 부활했다.
‘미스 트롯’이라는 음악 경연 프로그램이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트롯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었다. 경연이 진행되는 동안 심사위원으로 나왔던 인기가수 장윤정은 “… 가요사를 놓고 쭉 이야기를 할 때 분명히 송가인 씨의 이름이 그 역사 속에 이름을 올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봤습니다. …”라는 심사평을 했다. 진흙 속에 섞여 있던 진주가 마침내 영롱한 자태를 드러냈다는 의미일까? ‘미스 트롯’ 우승자인 송가인은 어느덧 인기스타 반열에 올랐다.
여자 가수들에게서 시작한 트롯 열풍은 ‘미스터 트롯’이 끝나면서 태풍으로 바뀌며 가요계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나이 든 사람들은 물론 촌스럽다며 싫어하던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기 시작한 것이다. ‘미스터 트롯’ 우승자인 임영웅도 송가인과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스타로 솟아올랐다.
트롯의 매력에 대해 ‘미스 트롯’ 및 ‘미스터 트롯’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작곡가 조영수의 인터뷰 내용이 인상적이다. “트롯의 쾌감은 재미예요. ‘이렇게까지 해도 될까?’싶은 것들을 신나게 밀어붙여요. 배터리, 재개발 이런 단어들은 원래 가사로 쓸 수 없는 단어잖아요. 화성에 안 맞는 멜로디도 써보고, 약간은 유치하게 써도 모든 게 용납되는 장르! 제약이 없는 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2박자 음악이 대부분이어서 뽕짝이라고 불리며 괄시받으면서도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던 트롯. 아이러니하게도 유치하지만 절절한 가사가 젊은이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문득 피천득 선생이 그의 수필집 ‘수필’에서 일갈한 말이 떠오른다. “… 수필은 청춘의 글은 아니요, 서른여섯 살 중년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며, 정열이나 심오한 지성을 내포한 문학이 아니요, 그저 수필가가 쓴 단순한 글이다.” 어라? 조영수 작곡가가 한 말과 어딘지 모르게 비슷하다. 유치해도 되고, 제약도 없는 게 매력이라는 트롯과 수필가가 쓴 단순한 글이라는 수필. 젊은이들은 촌스러워 싫어한다는 트롯과 서른여섯 살 중년 고개를 넘어선 노년의 글이라는 수필. 어쩌면 트롯과 수필을 서로의 도플갱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단조 5 음계에 2박자를 기본으로 구슬픈 향수나 이별을 노래하던 트롯이 댄스, 발라드 및 EDM(Electronic Dance Music) 등 다른 장르의 음악과 접목을 시도하면서 끊임없이 변신을 거듭했다. 이와 같은 변신은 ‘미스 트롯’이나 ‘미스터 트롯’에서 절정을 이룬 듯하다. 마치 뮤지컬을 보는 것처럼, 한 편의 잘 짜인 공연을 보는 것 같은 무대를 만들어 낸 것이다. 트롯이 화려하게 변신하면서 요즘엔 많은 전문가들이 트롯의 미래를 밝게 내다보고 있다.
우리나라 문단에서 시인 다음으로 많다는 수필가. 소설은 물론 시집과 아동문학에서도 베스트셀러가 있는데 아쉽게도 수필집에는 아직 없는 듯하다. 오랜 세월 젊은이들로부터 외면받던 트롯이 인기 장르로 변신하였듯 도플갱어 수필도 꽃피울 때가 되지 않았을까? 수필이 '노년의 글'이라는 틀을 벗어던지면 그때가 더 빨리 다가올지도 모른다. 트롯에서 송가인과 임영웅이라는 보석이 나타난 것처럼 세대를 아우르는, 영롱한 빛을 갈무리한 수필가가 나타나기를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