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양과 늑대 사이

by 아마도난

몇 년 전, 미국에서 시작하여 우리 사회에도 들불처럼 번져나갔던 미투가 다시 타오르고 있다. 이번에는 학교폭력 미투다. 인기 절정의 여자배구팀 주전 선수인 쌍둥이 자매가 첫 번째 주인공이다. 쌍둥이 동생은 평소 SNS 활동을 많이 했다고 한다. 자제하라는 경고도 받았다고 하니 어쩌면 중독 수준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익명의 팀 선배를 향한 독설을 SNS에 올리면서 사건이 시작됐다. 그 글을 읽은 중학교 때 팀 동료가 쌍둥이로부터 학교폭력을 당했다며 사과를 요구한 것이다. 이로 인해 쌍둥이 선수들은 팀에서는 무기한 출전 정지를, 국가대표팀에서는 무기한 선발 제외 조치를 당했다. 선수로서의 생명에 중대한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학교폭력 미투는 남자 선수에게 옮겨갔고, 신인 프로선수에게까지 불똥이 튀었다. 학교폭력 미투가 배구선수만의 문제일까? 아니 체육계에서 만의 문제일까?

학교폭력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은 이지메 (イジメ, 교내폭력이나 집단 따돌림)로 사회가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다. 미국에서는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학생이 가해자를 흉기로 살해한 사건도 있었다. 2012년 플로리다주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법원은 정당방위를 인정하여 무죄판결을 내렸다. 유럽의 경우 학교폭력 사건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시간은 휴게시간, 방과 후 돌봄 시간, 스포츠 활동 시간, 특별활동 시간 및 등하교 시간 등의 순서로 분석됐다. 교사나 학생들의 관찰과 통제가 어려운 시간에 주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와도 차이가 없다.


학교폭력의 원인은 무엇일까? 학교폭력은 청소년기의 일반적인 발달 심리적 특성과 가해자와 피해자 개인의 심리적 특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한다고 한다. 한 마디로 야코(콧대를 속되게 이르는 말) 죽으면, 기가 꺾이면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다. 6학년 학생이 공연한 트집을 잡았다. 부당한 행동에 화는 났지만 참고 그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덩치는 내가 더 컸어도 나이가 어려서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친구들이 싸움을 부추겼다. 몸싸움 끝에 그를 깔고 앉았다. 주먹 한 방이면 승부가 갈리는 순간인데 때려본 경험이 없어 주춤하다 상황이 역전되고 말았다. 그가 주먹을 날리기 전에 친구들이 싸움을 말려 얻어터지지는 않았지만, 그날 이후 6학년 학생은 나만 보면 우쭐하곤 했다. 그때 내가 주저 없이 주먹을 날렸더라면 결과가 어찌 되었을까?

쌍둥이 여자배구선수는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문을 작성했다고 한다. 이미 팀이나 배구협회로부터 중징계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으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 남자배구선수도 잘못을 인정하고 남은 경기에 출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배구협회도 이들에게 ‘무기한 국가대표 선발 제외’라는 징계를 내렸다. 철없던 시절에 한 행동 때문에 큰 대가를 치르게 된 것이다.


청소년기에 받은 상처는 아주 오랫동안 남아있다고 한다. 심한 경우 일상적인 생활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니 가해자들이 반성하고 사과한다고 해서 피해자들의 상처가 치유되지도 않을 것이다. 참으로 안타깝다. 그렇다고 청소년기에 벌인 일탈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이들에게만 물어야 할까? 10여 년 전에 저지른 잘못 때문에, 이제 잘못을 되돌릴 수도 없게 되었는데 무한 책임을 져야만 할까?

어느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나온 대화다.


“예수님은 어린양을 구하러 오셨을까요?”

“네!”

“그럼, 늑대는 어떻게 하죠?”

“…?”

“예수님은 늑대도 사랑하십니다.”


피해자의 눈물을 닦아주고, 가해자의 회한도 보듬어 안아줄 묘안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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