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아야 하는데

by 아마도난

‘수술 중’이라는 표시등만 빨갛게 비칠 뿐 복도도 전등도 온통 하얗기만 한 곳.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어 우리 형제들이 무표정하게 서성이며 내는 묵직한 구두 소리나 어쩌다 뱉어내는 한숨 소리만이 그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청결을 상징하느라 온통 하얀색으로 도배했겠지만, 그 순간만은 한겨울 칼바람보다 더 싸늘하게 느껴졌다. 수술실 문이 열리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눈길이 따라가고, 하릴없이 시계만 쳐다보길 5시간. 자정 무렵부터 시작된 수술은 새벽녘에야 끝났다. 담당 의사가 피곤한 얼굴로 “수술은 잘 됐습니다”라고 하는 말 보다 뒤이어 덧붙인 “언제 깨어날지는 모릅니다”라는 말이 더 큰 무게로 다가왔다.


몇 년 전 집에 홀로 있던 여동생이 뇌출혈로 쓰러졌다. 뇌출혈이 생겼을 때 치료할 수 있는 적기는 6시간이라는데 아무도 없는 집에서 여동생은 얼마나 오랫동안 홀로 죽음과 싸웠을까? 적기를 놓쳤는지 5시간 가까운 응급수술에도 불구하고 여동생은 눈 한 번 떠보지 못하고,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4개월여 만에 가족 곁을 떠났다. 참으로 허무했다. 의사나 병원에 대한 분노도 일었다. 수술이 잘됐다고 하더니 왜 의식을 찾지 못한 건지, 수시로 응급처치를 했는데도 어찌하여 4개월여 만에 삶을 마감했는지 따지고 싶었다.


임종 순간, 의사는 치료 중단에 대한 서면 동의를 요청했다. 가족을 대표해서 그들이 요구하는 서류에 서명하면서 내게 이런 상황이 온다면 복잡한 절차 없이 삶을 마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는 적법한 제도가 없었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2018부터 ‘연명치료 결정법’이 시행되었다. 법이 제정되었고, 이미 결심도 한 것이지만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제야 겨우 실행에 옮겼다. 등록 신청하고 한 달여가 지났을 때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 등록증’이 도착했다. “회복 불가능한 환자가 원치 않으면 연명의료를 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간단한 설명서와 함께….




그리스·로마 신화에 아스클레피오스라는 ‘건강의 신’이 나온다. 그는 건강한 뱀이 병든 뱀을 위하여 이름 모를 잎사귀를 물어다가 살리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 모습을 보고 아스클레피오스는 약초에 대해 알게 되어 상처를 아물게 하고 병을 낫게 하는 약을 개발했다. 그의 처방과 치료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건지자 고대인들은 그의 신전에서 하루를 보내기만 해도 모든 병이 낫는다는 신앙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상징은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라고 알려진 지팡이로 뱀 한 마리가 똬리를 틀면서 지팡이를 기어오르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아스클레피오스


아스클레피오스의 능력이 워낙 뛰어나 늙고 병들어 죽어야 할 사람을 치유하고, 죽은 사람까지 살려내자 ‘저승의 신’ 하데스가 분노를 터뜨렸다. 인간 세상의 생로병사 질서가 무너지고 저승세계가 텅텅 비었기 때문이다. 하데스가 제우스에게 아스클레피오스에 대한 불만을 얘기하자 공감한 제우스가 번개를 던져 그의 목숨을 앗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들을 잃은 아폴론이 격렬하게 분노했다. 제우스는 아폴론을 달래기 위해 아스클레피오스를 신의 반열에 올렸다.


저승의 신, 하데스


아스클레피오스는 아폴론이 코로니스라는 여성과 관계하여 낳은 아들로 반인반신이다. 제우스는 아폴론을 달래기 위해 아스클레피오스를 신으로 승격시키고 그의 모습을 하늘에 두었다. 그게 바로 별자리 가운데 하나인 ‘뱀 주인 자리 혹은 땅꾼자리’다.


의술이 좋아지면서 100세를 넘어 150세까지 산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이 모든 게 아스클레피오스가 환생해서 사람들을 저승 문턱에서 다시 데려와서 그런 것은 아니겠지? 몇 년 전 “…80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쓸 만해서 못 간다고 전해라…”라는 가사로 인기를 끌었던 ‘백 세 인생’이라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를 요즘은 ‘못 간다고 전해라’ 대신 ‘냉큼 간다고 전해라’라고 부르는 이도 있다고 한다. 혹시 그들은 하데스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있는 것을 보았나?




회복 불가능한 병에 걸려 죽음이 눈앞에 왔는데 갑자기 간절하게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매달리고 싶어지면 어떡하지? 지금 생각 그대로 흔들림 없이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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