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을. 중랑천 산책로에 ‘개양귀비 꽃씨가 파종되었습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었다. 처음 이곳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연탄공장에서 날아오는 연탄재와 중랑천에서 나는 악취로 창문조차 열지 못했다. 그랬던 곳에 매년 나무를 심고, 꽃씨를 뿌리며 산책로를 다듬어 지금은 유럽의 어느 강변 풍경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다워졌다. 중랑천에도 어른 팔뚝보다 더 큰 잉어가 지천이고, 텃새가 된 청둥오리와 가마우지가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곳에서 내 삶의 반평생이 넘는, 30여 년의 세월을 보냈으니 고향보다 더 애착이 가는 곳이기도 하다.
여름을 재촉하는 봄비가 내리고 난 뒤 문득 중랑천 변에 개양귀비 꽃이 피었는지 궁금해졌다. 산책로에 들어서자 아련하게 개양귀비 꽃 향기가 풍겨오는 것 같기도 했다. 향기가 내 코끝에 닿기에는 꽤 먼 거리인데…. 공연히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다가가자 붉은색, 흰색 꽃이 어우러진 꽃길이 나타났다. 봄비에 생기를 얻었는지 그야말로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유혹하듯 하늘거리는 모습 또한 무척이나 요염했다.
아름다운 꽃에 어찌 사연이 없을까? 양귀비꽃에는 항우와 우미인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담겨있다. 「사기 항우 본기」에 ‘(항우에게는) 우(虞)라는 이름의 미인이 있어서 늘 총애를 받아 따라다녔고, 추(騅)라는 이름의 준마가 있어서 늘 이를 타고 다녔다.’라는 기록이 있다. 험한 전장에 데리고 다닐 정도로 항우는 우미인을 사랑했다. 초한 전쟁 막바지에 항우는 해하에서 유방에게 포위를 당했다. 병력과 양식마저 부족하여 패색이 짙어지자 항우는 우미인과 술을 마시며 「해하가」를 불렀다.
힘은 산을 뽑고 기개는 세상을 덮었도다.
하지만 시운이 불리하니 추(騅)도 나아가지 않는구나.
추마저 나아가지 않으니 난 어찌해야 하는가.
우희(虞姬)여, 우희여! 그대를 어찌하면 좋은가.
항우의 노래가 끝나자 우희도 답가를 불렀다.
한군은 이미 천하를 다 빼앗았고,
사방에서 들려오는 것은 초나라의 노랫소리.
대왕의 의기가 다하셨다면
천첩이 살아서 무엇하리오.’
노래를 마치고 우미인은 자진했다고 한다. 그녀와 항우의 사랑 이야기는 훗날 경극 ‘패왕별희’의 소재가 되었고, 그녀의 무덤에는 예쁜 꽃이 피어났다. 사람들은 이 꽃이 우미인이 환생한 것이라 하여 우미인초라고 불렀는데 바로 양귀비꽃이다.
산책로를 걸으며 양귀비꽃을 감상하다 보니 마치 내가 항우라도 된 것 같았다. 굽은 길을 돌아설 때마다 나타나는 양귀비꽃이 마치 우미인이 항우와 술래잡기하며 ‘나 잡아 봐라!’하는 것 같아 걸음이 절로 빨라졌다. 그러다가 걸음을 멈추고 꽃잎을 매만져보기도 하고, 향기를 맡으려 코를 가까이 가져가 보기도 했다. 이럴 때 사타구니 사이에 작대기 하나라도 끼워 ‘이랴! 이랴!’하고 말 타는 흉내라도 냈더라면 영락없이 항우와 우미인이 노니는 모습일 텐데….
바람이 들려주는 음률에 맞춰 양귀비꽃들이 군무를 추었다. 주위에서 금계국, 메꽃 그리고 이름 모를 들꽃들도 더불어 춤의 향연을 벌였다. 양귀비꽃에서 중국 4대 미인의 한 명으로 꼽히는 양귀비를 떠올리는 것은 무리일까? 그녀에게는 수화(羞花)라는 표현이 따라다닌다. 양귀비가 고향을 그리워하며 꽃을 만지자 그녀의 미모에 부끄러움을 느낀 꽃이 고개를 숙였다고 해서 생긴 표현이다. 양귀비가 손을 내밀었을 때는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던 꽃들이 양귀비꽃과는 아름다움을 다투다니…. 괘씸하다.
그보다는 내 눈에 들려고 앞다투어 고개를 내미는 것은 아닐까? 그건 내 착각이라고? 착각인들 어떠리. 지금이 자기의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청맹과니보다는 나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