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의 앱을 열자 지도가 펼쳐지면서 현재 내가 있는 위치에 빨간 표시가 떴다. 어디를 가든 빨간 표시는 내 위치를 알려줄 터이니 아무래도 대형(Big Brother)의 눈 밖으로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빨간 점을 중심으로 사방에 ‘20’이라는 숫자가 나타났다. 그 숫자들을 쓱 훑어보고 ‘오늘은 어떤 순서로 걸을까?’ 하며 집을 나섰다.
얼마 전부터 TOSS라는 앱에 있는 만보기를 이용하고 있다. 매일 지정된 장소 5곳을 방문하거나 지나가면 한 곳당 20원씩 주고, 만 보 이상을 걸으면 추가로 40원을 주는 등 하루에 최대 140원을 준다. 한 달 동안 부지런히 걸으면 4,200여 원을 버는 셈이다. 그냥도 걷는데 돈까지 준다고 하니 집을 나설 때는 언제나 앱을 작동시킨다.
대형 :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서 비롯된 용어. 긍정적 의미로는 사회를 돌보는 보호적 감시, 부정적 의미로는 권력자들의 사회통제 수단을 말한다.
2021년 말 기준으로 토스 사용자는 1,400여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들이 매일 140원씩 받는다면 토스가 지급해야 하는 돈은 19억여 원에 달한다. 연간으로는 7,000억 원이 넘는 금액이다.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인데 공짜로 돈을 주는 토스는 어떻게 수익을 창출할까?
비슷한 회사들이 있다. 쿠팡은 설립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이익을 내지 못했다. 오히려 매년 4~5,000억 원의 적자를 내서 쌓인 적자가 4조 5,500억 원을 넘는다. 이런 회사가 망하지 않은 것도 신기한데 놀랍게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현재 이 회사의 기업가치는 100조 원 정도로 평가된다. 우리나라에서 삼성전자 다음으로 비싼 기업이 된 것이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 마켓컬리도 쿠팡과 비슷하다. ‘샛별 배송’이라는 신박한 아이디어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냈지만, 설립 이후 한 번도 이익을 내지 못했다. 이들의 누적 적자 역시 2,700억 원에 달한다. 그런데도 역시 시장에서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마켓컬리의 현재 시장가치는 4조 원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머지않아 1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도대체 이런 기업들이 막대한 적자를 내면서도 승승장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들은 해외의 재무적 투자자들로부터 성공적으로 자본을 유치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쿠팡은 소프트방크가 38%의 지분을 가진 최대 주주다. 소프트방크가 투자한 금액만 3조 3,000억 원이 넘는다. 마켓컬리도 중국과 미국의 벤처캐피털로부터 투자를 끌어냈다. 사업에서 발생한 손실을 자본 유치로 극복한 것이다. 그들의 미래가치에 공감한 투자자들이 기꺼이 지갑을 연 것이다. 쿠팡과 마켓컬리는 투자자들에게 제시한 사업모델이 성공적이라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이를 위해 그들은 신박한 아이디어를 짜내며 다각적인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결과는 두고 봐야겠지만….
토스 만보기를 통해 내가 받는 돈은 사실 푼돈에 불과하다. 한 달 동안 열심히 걸어봐야 커피 한 잔 마실 정도의 돈이 모아질 뿐이다. 그야말로 티끌 모아 티끌이다. 반면 토스는 내게 140원을 주는 대신 빅데이터 구축에 활용해서 상상을 초월하는 가치를 창출할는지도 모른다. 혹은 내가 짐작하지도 못하는 어떤 가치를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어쨌든 간편 결제를 앞세워 금융시장에서 사업영역을 넓히고 있는 토스도 머지않아 금융시장의 거대 공룡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쿠팡이나 토스 혹은 카카오 등은 플랫폼을 깔아놓고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나는 그들이 깔아놓은 플랫폼 속에서 작은 이익을 찾아 ‘티끌 모아 티끌’을 하고 있는데 그들은 그야말로 ‘티끌 모아 태산’을 하고 있다. 나와 그들 사이의 간격이 이미 우주만큼이나 넓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