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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나 상수리나

by 아마도난

과연 누가 차악일까? 그게 누구이든 맛있는 묵이 만들어지길 바랄 뿐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가을 산에는 도토리나 상수리를 줍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경쟁도 치열하여 동이 트기 전에 집을 나서는 사람도 많았다. 그 도토리와 상수리가 다람쥐나 멧돼지 먹이로 남겨두자는 운동이 벌어진 다음부터 산에 지천으로 널려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으로 착한 백성들이다. 옳다고 판단되면 너나없이 다 따라주니 말이다.

참나뭇과에 속하는 모든 나무(떡갈나무, 졸참나무, 갈참나무, 굴참나무, 상수리나무)의 열매가 도토리다. 그 가운데 상수리나무의 열매만 따로 상수리라고 부른다. 결국 상수리나 도토리나 생김새만 다를 뿐 같은 종자라는 얘기다. 구분은 어떻게 할까? ‘드러누워 배꼽에 얹어놓고 흔들었을 때 굴러 떨어지면 상수리, 잘 박혀 있으면 도토리. 꼬마들 구슬치기 대용이 되면 상수리, 그렇지 못하면 도토리. 떡메 맞고 후드득 떨어지면 상수리, 여물어 저 혼자 떨어지면 도토리. … 갓난아기 불알만 하면 상수리, 할아버지 썩은 송곳니만 하면 도토리.’ 어느 시인이 도토리와 상수리를 구분하는 법을 적어 놓은 시다. 그럴듯하다.



20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점입가경이다. 한쪽에서 대선후보의 배우자 문제를 제기하면 다른 정당도 상대 후보의 배우자 문제를 들고 나온다. 대선후보의 도덕성 문제를 들고 나오면 상대 정당도 역시 도덕성 문제로 공격한다. 정책대결보다 말싸움이 주를 이루는 선거운동에 대해 어느 정당의 선대위 관계자는 미러링 효과(Mirroring Effect)라는 어려운(?) 용어로 표현하기도 한다. ‘상대가 어떤 주제를 제기하면 우리도 같은 범주의 주제로 받아친다.’라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권력만 보일 뿐 유권자의 마음을 읽고, 국가의 미래에 대한 원대한 계획을 그릴 생각은 없다는 의미 아닐까?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에 대해 미국 워싱턴 포스트나 영국의 타임스는 ‘민주화 이후 35년 역사상 가장 불쾌한 선거’라는 혹평을 내놓았다. 추문과 말다툼, 모욕으로 얼룩진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는 것이다. 워싱턴 대학교의 다시 드라우트 교수도 ‘이번 대선 캠페인은 나이와 성별, 계층별로 유권자 분열이 극심한 가운데 차악을 뽑는 선거라는 프레임이 만들어져 있다.’라고 말했다.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는 혹평을 받으면서도 양대 후보의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하며 큰 변동이 생기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캐나다 심리학자인 키스 스타노비치는 ‘우리 편 편향(Myside Bias: 진실을 외면한 채 자기 편만을 우호적으로 해석하는 편향)’ 때문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된 흥미 있는 연구가 있다. 미식축구 경기를 벌인 두 대학교 학생들에게 양 팀의 반칙 숫자를 세어 보라고 하자 상대 팀의 반칙을 더 많이 지적하더라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열린 생각, 합리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조차 ‘우리 편 편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한다.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는 이번 선거에서 유력 후보자들이 눈꼴사나운 짓을 벌이는 이유도 이런 현상 때문인가?


더 부패하기 쉬운 사람이 더 권력을 원하며, 권력을 획득하는데도 더 능하다고 한다. 도토리와 상수리 가운데 누가 더 권력욕이 강할까? 선거는 최선이 아닌 차악을 뽑는 것이라는데 저마다 잘났다고 우기는 도토리와 상수리 가운데 과연 누가 차악일까? 그게 누구이든 그저 맛있는 묵이 만들어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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