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의 저승사자라 불리는 조사 4국의 세무조사를 받을 때였다. 수십억 원을 추징당할 수도 있는 사안을 두고 조사관들과 첨예하게 다투었다. 금액도 금액이지만 그들이 과세하겠다는 논리를 받아들일 수 없어 나중에는 감정대립마저 벌어졌다. 돌파구를 찾으려고 궁리하다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조사관의 딸이 난치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대학병원이나 용하다는 의사를 모두 찾아다니며 딸을 치료했어도 차도가 없자 안타깝게도 역술인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치료할 방법을 찾을 수 없자 딸의 팔자가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그랬던 모양이다. 수소문 끝에 유명인사들도 은밀히 찾는다는 역술인을 만나게 해 주었다. 상담을 마치고 그는 “특별히 뛰어난 역술인은 아니네요. 하지만 신경 써줘서 고맙습니다.”라며 웃어 보였다. 그의 도움으로 쟁점 사항은 내게 유리하도록 종지부가 찍혔다.
정치적 출세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용하다는 역술인에게 운명 감정(?)을 받고는 “커다란 상자 안에 찬란하게 빛나는 감투 하나가 보인다는 거야.”라며 무척 좋아했다. 하나로는 섭섭해서 혹시 더 보이는 감투는 없느냐고 물었더니 하나뿐이라고 하더란다. 그는 감투를 국회의원 당선으로 해석했다. 역술인의 말을 철석같이 믿은 그는 ‘이왕이면 여러 개가 있다고 얘기해주지.’하면서 몹시 아쉬워했었다. 몇 년 뒤 그는 사기죄로 구속되어 실형을 살았다. 빛나는 감투는 쓰지 못하고 ‘빛나는 별’을 단 것이다. 역술인이 용하기도 하지…. 그나저나 아직도 배지를 달지 못한 것을 보면 그는 국회의원이 될 팔자는 아니었나 보다.
큰 부자는 노력하면 이룰 수 있지만 하늘이 내린 부자는 따로 있다고 한다. 대통령도 하늘이 내린다고 한다.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고 타고나야 한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대통령을 꿈꿔온 사람들은 모두 실패했는데, 얼마 전까지도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을 사람은 대통령이 되었다. 이런 사실에 미루어보면 하늘이 점지한다는 말이 맞긴 맞는 모양이다.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고 타고나야 한다니 어찌하겠는가? 천기(?)를 읽을 수 있다는 사람에게 물어볼 수밖에…. 연초에 유명 역술인의 집 앞이 북적이고, 큰일을 앞두고 역술인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도 이런 까닭 이리라.
큰 인물은 하늘이 점지하는 것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타고나야 하는 것은 맞는 모양이다. 잭 햄브릭 미시간주립대 교수 연구팀은 ‘노력과 선천적 재능의 관계’에 대해 연구했다. 그 결과 학술 분야에서 노력한 시간이 실력의 차이를 결정짓는 비율은 4%, 음악은 21%, 체스 등 게임에서는 26% 그리고 스포츠 분야는 18%라고 결론지었다. 즉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꾸준히 노력해야 하나, 그렇다고 해도 선천적 재능을 앞서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타고나야 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냉정하고 서글프다. 그러니 팔자타령을 할 수밖에….
나훈아의 노래 「공(空)」에 ‘~살다 보면 알게 돼 버린다는 의미를/ 내가 가진 것들이 모두 부질없다는 것을~’이라는 가사가 나온다. 예전에 노래방에서 자주 흥얼거리던 노래다. 요즘은 그의 또 다른 노래 「자네!」에 빠져 있다. ‘~자네는 아는가 진정 아는가/ 팔자는 뒤집어도 팔자인 것을’. 가사가 참으로 절묘하다. 혹시 ‘살다 보면 알게 돼 팔자는 뒤집어도 팔자인 것을’이라고 두 노랫말을 하나로 섞어버리면 지나치다고 할까? 분명한 것은 8자는 뒤집어도 8 자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