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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불어 좋은 날

by 아마도난

위에서 떨어지는 차가운 물줄기가 머리를 흠뻑 적셨다. 뜨거운 햇살에 시달린 다음이어서 차가운 물이 차라리 반가웠다. 잠시 후, 머리를 적신 물은 천천히 이마로 내려왔고, 또 한 줄기는 귓불을 간지럽히며 흘렀다. 귓불을 지난 물이 부드럽게 뺨을 적셔오자 응석이라도 부리는 것처럼 살짝 고개를 숙였다. 이마를 지난 물은 아미를 따라 흘러 내려오더니 콧등을 지나 입술을 부드럽게 간질였다. 오랫동안 참아온 갈증을 풀어줄 것 같은 부드러움에 ‘음’하고 입이 살짝 벌어졌다. 뺨과 입술을 지난 물은 턱에서 만나 하나는 목을 타고 아래로 향하며 가슴골을, 또 하나는 어깨선을 따라 흐르며 허리선을 간지럽혔다. 두 물줄기는 다시 만나 거침없이 아래로 향하며 가볍게 간지럼을 태웠다. 순간 간지럼으로 조금씩 흔들리던 몸이 마치 강한 자극이라도 받은 것처럼 휘청이더니 제자리로 돌아왔다.

뒤이어 부드러운 바람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고 뺨을 어루만지더니 입술을 살며시 더듬었다. 방금 차가운 물을 뒤집어썼는데도 또다시 갈증이 느껴졌다. 한 모금의 물이 간절했다. 간절함으로 하늘을 향해 턱을 치켜들자 온몸에 전율이 흐르며 가볍게 떨렸다. 그 모습을 즐기기라도 하듯 바람은 목덜미에서 턱으로, 턱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허리를 희롱하며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 짓궂은 바람의 장난에 몸을 맡기며 살랑거리다 갑자기 격렬하게 흔들렸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짜릿한 전율이 흐르기라도 한 것처럼….


시원한 물이 전해 준 간질임을, 바람이 가져온 짜릿함을 즐기느라 감았던 눈을 살며시 떴다. 세상에! 온 세상이 별로 가득했다. 노란색, 빨간색, 흰색, 파란색…. 어떤 별은 멀리서 반짝이기만 하고, 어떤 별은 빠르게 다가왔다가 급하게 사라져 버리기도 했다. 크기도 다르고 밝기도 다른 뭇별들이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반짝이고 있었다. 궁금했다. 바람이 나를 어루만진 것인지 아니면 저 별 가운데 하나가 나를 어루만지고 간 것인지. 누군지 알면, 손이라도 있으면 마주 뻗어서 만져볼 텐데…. 궁금했지만 야속하게도 아는 체하는 이가 없었다.


문득 다가오는 인기척이 있었다. 그것도 여럿이 다가오는 소리였다. 공연한 긴장감에 온몸을 흔들어 거부의 몸짓을 보였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가왔다. “어머, 이 장미꽃 봐. 정말 소담스럽지 않니?” 예쁜 여자 목소리였다. “인증샷 찍으면 예쁘게 나오겠다.” 친구인 듯한 여자의 목소리가 이어서 들려왔다. ‘예쁘다!’를 연발하면서 그들은 교대로 사진을 찍었다. 마침 바람이 불어와 몸을 가볍게 흔들자 “아야!”하는 비명이 들려왔다. 여자가 가시에 찔린 것이다. 장미는 ‘난 아니야. 내가 그녀를 아프게 한 게 아니란 말이야!’라며 고개를 숙이고 바람 뒤에 숨었다. 잠시 후 살며시 고개를 든 장미의 얼굴은 눈이 부시도록 붉었다. 바람의 품속이어서 가슴이 설렜을까 아니면 여자의 피에 젖어서 그렇게 됐을까?

밤이 깊도록 사람들은 장미와 더불어 사진 찍기를 멈추지 않았다. 하나같이 장미꽃에 얼굴을 비비며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장미에 얼굴을 바짝 맞대면 누가 더 예쁘게 나올까? 아무래도 거리두기가 완화된 후 처음 맞는 봄바람에, 그 부드러움에 장미도 사람도 잠 못 드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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