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함이 가득했다. 대부분 홍보용 우편물이거나 광고전단이다. 전자우편(이메일)이 일반화되고, SNS가 일상이 되었어도 이런 홍보물 때문에 우편물 홍수 속에 살아야 한다는 것이 짜증스럽다. 자기 상품을 알리려고 기업들이 기를 쓰고 보낸 우편물들은 개봉되지도 않은 채 대부분 휴지통으로 보내진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 홍보물을 보내야 하는 기업들도 답답하기는 하겠지? 우편함에 든 것을 모두 꺼내 하나씩 겉봉을 살폈다. 역시 신용카드사, 보험사 혹은 알 수 없는 업체 등에서 보낸 홍보물이 대부분이었다. 늘 그렇듯 뜯어보지도 않고 무덤덤하게 휴지통에 넣었다. 그러다가 주소와 이름이 손글씨로 정갈하게 쓰인 편지를 발견했다.
‘글씨 참 예쁘다.’라고 생각하며 살펴보니 보낸 이가 낯선 여자였다. ‘에이, 남의 집 우편물이 잘못 들어와 있었군!’ 인상적인 편지였는데 남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왠지 아쉬웠다. 우편함에 넣어주려고 받는 이를 확인했다. ‘어럽쇼, 내게 온 편지네?’ 남의 편지라고 생각할 때는 아쉬웠는데 막상 내게 온 편지라는 것을 알고 나니 잠시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상한 내용이 담기지나 않았을까 하는 염려가 든 것이다. 변덕스럽기는…. 잠시 망설이다 ‘읽어보면 알 것을 공연히 지레짐작하고 있네!’ 하고 생각하며 봉투를 뜯었다.
두툼한 질감의 누런색 편지지가 들어 있었다. 조심스럽게 편지지를 꺼내자 색연필로 그린 작고 예쁜 꽃다발이 맨 먼저 눈길을 잡아끌었다. ‘누구길래 이렇게 그림까지 정성스럽게 그려가며 편지를 썼을까?’ 처음에 품었던 염려는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보낸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 서둘러 편지지를 펼쳤다. ‘보내주신 수필집 《좋다 말았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로 시작하는 글자가 편지지 2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편지를 읽어가다 만년필로 정갈하게 채워진 편지지에 고쳐 쓴 글자가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실수하면 다시 쓰고, 실수하면 또다시 썼을, 쓴 사람의 정성이 가득 담긴 편지였다.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그냥 책 한 권 보냈을 뿐인데 이런 감사 편지를 받다니…!’ 글자에서는 향기가, 문장에서는 기품이 뿜어 나오는 듯했다.
‘… 글을 쓰면서 자신과 인생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성찰하는데 수필만큼 좋은 장르가 또 있을까요? 선생님의 수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인문학적인 배경지식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담은 글 속에 가끔씩 빙긋 웃게 만드는 유머까지 들어 있어서 책장을 펼치고 끝까지 읽게 했답니다…’ 수필에 대해 뚜렷한 주관을 가진 분이었다. 그런 분이 최고의 찬사를 담아 편지를 보낸 것이다.
손편지를 마지막으로 받아본 게 언제였던가? 아니, 손편지를 마지막으로 써본 게 언제였을까? 언제 마지막으로 보냈고, 언제 마지막으로 받았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손편지. 그 손편지를 받았다. 첫사랑 여인에게서 편지를 받은 것 같은, 그런 뭉클한 편지를 말이다. 그녀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글은 〈하마터면〉이라고 했다. ‘… 하마터면 미워할 뻔했습니다.라는 말에 가슴이 쿵! 했습니다.….’ 돌아가신 친정어머니, 시어머니가 생각나서 그랬다고 했다. 그녀가 ‘가슴이 쿵! 했다.’라고 한 말에 내 가슴도 쿵! 하고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수필 한 편, 한 편을 꼼꼼하게 읽는 독자가 있는데, 글을 쓴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다양한 감성을 느끼는 독자가 있는데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데 정성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새삼 든 것이다.
그녀에게 보내는 답장을 수없이 썼다. 그리고 그만큼 지웠다. 그녀만큼 삶을 진지하게 대하지 못한 내가 답장을 보내도 되는지 가늠이 안 됐기 때문이다. 도대체 언제쯤이나 우체통과 휴지통 사이를 오가는 방황을 끝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