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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도난 Sep 01. 2022

거장의 향기 덕분에

마을 입구에 도착하니 왕복 2차선 도로의 한쪽 편에 줄지어 주차된 차들이 보였다. ‘설마 이 많은 차들이?’ 하는 생각을 하며 마을에 들어섰다. 그곳에는 더 기가 막힌 풍경이 펼쳐있었다. 마을을 관통하는 도로는 물론 작은 골목길에도 빈자리 하나 없이 주차된 차들로 가득했다. 바늘 하나 꽂을 틈도 없는 곳에 겨우 송곳같이 주차하고 공연장으로 가니 입장하려는 행렬이 또한 장난이 아니었다. 줄의 끝은 마을 밖에 있었다. 어림잡아도 1Km가 넘는 긴 줄이 이미 생긴 것이다. 2022년 여름이 끝자락을 보이는 8월 말에 열린 제8회 계촌 클래식 축제를 보러 온 사람들이 만든 풍경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2년간 비대면으로 진행되었다가 대면 행사로 바뀐 영향도 있겠지만 소동의 더 큰 원인은 임윤찬 군의 출연 때문이다. 예매 사이트가 열리자마자 1초면 매진된다고 해서 ‘1초 땡’이라고 불릴 정도로 임윤찬 군의 공연 입장권은 구매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런 그를 보려고 수많은 사람이 강원도 평창의 두메산골 계촌리를 찾아온 것이다. 다음날 보도된 신문에는 ‘애초 행사 주최 측은 초청 인원보다 많은 3,500석을 준비했는데 임윤찬 군을 보겠다고 무작정 찾아온 사람이 너무 많아 5,000명이 넘었다.’라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계촌리 마을이 생긴 이래 이보다 많은 사람이 모인 적이 있을까?


행사에 초청받기 위해서는 신청 사연을 적어 인터넷으로 접수해야 했다. 신청 첫날, 접수사이트가 열리자마자 주최 측의 인터넷 서버가 다운됐다고 한다. 엄청난 인파가 몰린 것이다. 아내도 공연을 보고 싶어 간절한 눈빛으로, 무언의 압력을 담아 내게 신청서 작성을 요구했다. 쉽지 않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사연을 정리하여 접수했다. 초청자 발표하는 날. 머리로는 기대하지 않는다면서 마음으로는 ‘혹시?’ 하며 이메일, 카카오톡 그리고 문자 메시지를 수시로 확인했다. 마침내 ‘제8회 계촌 클래식 축제 선정자 안내’라는 문자가 들어왔다. 아내는 뛸 듯이 기뻐했고 내 가슴도 덩달아 흥분했다.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나대지 마, 심장아!’를 몇 번이나 중얼거려야 했다.


아내 주변에는 임윤찬 군의 공연을 보려고 계촌 클래식 축제에 사연을 보낸 사람이 많았는데 초청받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들이 비결을 묻자 아내는 무심한 체하며 ‘남편이 사연을 써줬어.’라고 대답했단다. 그 말을 들은 아내 친구들은 ‘역시 작가님이 써주니 다르네!’ 하며 작가 남편을 둔 아내를 부러워했단다. 공연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주변 사람의 부러움은 커졌고, ‘역시 작가님이야.’ 하는 찬사도 많이 들렸다. 임윤찬 군 덕분에 나도 ‘글 잘 쓰는 작가님’ 소리를 듣게 된 것이다.


공연이 시작됐다. 악보는 머리에 채우고, 음표는 손가락에 새기고 가슴에는 뜨거운 감성을 담아 임윤찬 군의 손가락이 피아노 건반 위에서 춤을 추었다. 때로는 젖을 찾는 아기처럼 입을 삐쭉거리기도 하고 때로는 음유시인처럼 우수에 젖은 눈으로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천변만화하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뼈 없는 연체동물처럼 그의 손가락은 때로는 봄바람에 흐느적거리는 풀잎처럼, 때로는 광풍에 온몸을 맡긴 버드나무처럼, 때로는 미친 사나이의 거친 몸 사위처럼 건반을 희롱했다. 눈을 깜빡이면 그의 손가락이 사라질 것 같고, 숨 한번 쉬면 음표가 날아가 버릴 것 같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한 곡이 끝나면 막혔던 큰 숨을 토해내며 질식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다시는 그의 음악을 듣지 않으리라 다짐하다가도 다음 곡을 기다리고, 앙코르를 외쳤다.


객석에서는 18살의 어린 천재에게 ‘멋지다’, ‘귀엽다’라는 찬사가 끝없이 이어졌다. 그가 우승한 반 클라이번 음악제의 주인공 반 클라이번처럼,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고 불린 파가니니처럼 그도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유망주를 넘어 거장의 향기를 풍기기 시작했다. ‘1초 땡’이라 부르며 그를 사랑하는 애호가들의 성원 속에 앞으로 어느 경지까지 발전하게 될는지…. 그의 앞날이 궁금하다.


임윤찬 군 덕분에 계촌리 나들이도 하고 ‘글 잘 쓰는 작가’ 소리도 들었는데 앞으로도 그의 향기에 꼽사리 끼어볼 수는 없을까? 그가 발전하는 만큼 나도 발전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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