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첫날 숙박한 알베르게 가이드 마킬라의 시설은 깔끔했다. 알베르게에서의 첫 번째 숙박을 감안해 4인실로 예약했었는데, 나 빼고 3명이 모두 여성이었다. 아내에게 여성 세 명과 동침하게 생겼다고 카톡을 보냈더니 "계 탔네!" 란 짧은 답이 왔다.
팜플로나에서 푸엔테 라 레이나로 가는 길에는 철제 순례자 조형물로 유명한 ‘용서의 언덕(Alto del Pardon)’이 있다. ~(중략)~ 과연 인간은 자신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할 수 있을까? 진정한 용서는 인간이 아니라 신의 영역이라는 말도 있으니, 그만큼 용서하기 어렵다는 말일 것이다.
로그로뇨 산타마리아 대성당 아침 9시 미사에 참석했다. 가톨릭 신자도 아니고 미사가 진행되는 내내 단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뭔지 마음이 꽉 차는 느낌이 들었다. 아프지 않고 무사히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완주할 수 있기를, 한국에 있는 가족들의 건강을 기원했다.
산티아고까지 남은 거리가 줄어들 때마다 문득문득 들었던 생각…. 도대체 나는 왜 이 길이 그렇게 걷고 싶었을까? 누군가 지금 나에게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까?
그들(30대 초반과 20대 후반의 젊은 여성) 역시 아빠 또래의 중년 아재와 함께 걷는 것이 뭐가 재미있겠는가? 저녁을 먹은 후 내 생각을 전달하고, 내일부터는 따로 걷자고 말했다. 혹시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면 반갑게 인사하자고 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순례길을 걸으며 행복한 순간이 참 많았다. 하지만 그 순간 행복하다고 느끼기보다는 지나고 나서 행복이었음을 깨달았던 경우가 훨씬 많았다. 살아가면서 행복을 그 순간에 바로 감지할 수 있다면 인생은 훨씬 풍요로워질 것 같은데 말이다.
카미노에서 만난 70대 자유 영혼 큰 형님께서 자기 집에서 출발해 무려 2,500Km를 걸어 3개월 만에 산티아고에 도착한 76세의 네덜란드인에게 물었단다.
“뭔가 깨달음이 있나요(Something special in your mind)?”
“개뿔! 그런 거 없어요(What the fuck! Noth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