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라지를 사이에 두고 애틋한 사랑을 나누던 연인이 있었다. 거룻배를 타고 건너야 겨우 만날 수 있었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뜨거웠다. 어느 날, 많은 비가 내려 강물이 성난 맹수처럼 거칠게 흐르며 주변의 많은 것들을 휩쓸어 갔다. 이로 인해 싸리골로 동백을 따러 다니며 사랑을 키운 두 사람도 만날 수 없게 되었다. 반대편 강변에서 자기를 기다리는 처녀를 생각하며 총각은 강을 건널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을 노래했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날 좀 건네주게
싸릿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강 건너에서 총각을 기다리던 처녀도 야속한 강물을 바라보며 화답이라도 하듯 노래를 불렀다. 처녀, 총각이 안타까움을 담아 애절하게 부른 노래가 바로 「정선아라리」이다.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쌓이지
사시장철 님 그리워서 못 살겠네.
총각은 돈을 벌기로 했다. 많은 돈을 벌어 멋진 집에서 같이 살면 비가 오든 눈이 오든 걱정할 게 없을 테니까. 문제는 두메산골이어서 돈 벌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사실이었다. 마침 궁궐을 새로 짓는다는 소문을 듣고 총각은 나무를 베어 한양으로 가져다 팔기로 작정했다. 낙락장송을 베어 강가에 모아놓고 칡뿌리 등으로 꽁꽁 묶어 뗏목을 만들었다. 강물이 적을 때는 한양까지 보름, 물이 많을 때는 사나흘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한양 가는 동안 영월의 되꼬까리 여울이나 평창의 황새 여울을 지날 때 암초에 부딪혀 죽거나 다칠 수도 있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총각은 주머니에 가득 들어올 돈을 상상하며 뗏목 위에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마포나루에 도착하니 정신이 어질 했다. 생전 처음 보는 많은 인파와 물건에 입이 벌어졌고 여인들의 분 냄새에 혼이 쏙 빠졌다. 다행히 가져온 나무는 좋은 값을 받고 팔 수 있었다. 그야말로 떼돈을 벌었다. 큰돈을 손에 쥐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돈은 총각 것이 아니었다. 가장 먼저 고향에서 자기를 기다리는 처녀에게 줄 선물을 사느라 많은 돈을 썼다. 분 냄새에 취해 주막집 기생의 고쟁이 사이로도 한 움큼 들어가고 투전꾼 주머니로도 옮겨갔다. 손에 쥔 모래알처럼 떼돈은 총각의 손가락 사이로 모두 빠져나갔다. 목숨 걸고 한양까지 가서 큰돈을 벌었는데 다시 빈털터리가 된 것이다. 그런 사실을 모르는 처녀는 총각을 기다리다 지쳐 아우라지에 투신해 목숨을 끊었다. 그야말로 말짱 도루묵이 된 것이다.
국가대표를 지낸 운동선수와 어지자지처럼 행세하는 사람 사이에 벌어진 엽기적 사건이 화제다. 둘이 공모를 했는지 서로를 속이고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떼돈을 벌려고 작정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온갖 수단을 동원해 뗏목을 만들어 떼돈을 벌기 직전이었는데 그 뗏목이 떼돈을 싣고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있으니….뜨겁게 사랑한다던 두 사람이 서로를 아우라지에 빠뜨리려고 벌이는 진흙탕 싸움을 바라보며 「정선아라리」를 떠올려본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1. 아우라지는 두 강이 만난다는 의미로 송천과 골지천이 만나는 곳이다. 두물머리와 같은 뜻이다.
2. 뗏목으로 만들어 운반해 온 나무를 한양에서 팔아 번 돈을 떼돈이라 한다. 그렇게 번 돈이 35~40원으로 19세기 중엽의 군수 월급 20원보다 훨씬 많아서 ‘떼돈 벌었다’라는 말은 ‘큰돈 벌었다’라는 뜻으로 쓰였다.
3. 어지자지는 남자와 여자의 생식기를 한 몸에 겸하여 가진 사람이나 동물을 가리키는 우리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