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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도난 Jan 19. 2024

용(龍)을 내리자

교수신문은 2023년을 상징하는 사자성어로 견리망의(見利忘義)를 꼽았다. 장자 신목편에 나오는 말로 ‘이로움을 보자 의로움을 잊는다.’라는 뜻이다. 정치인들이 나라를 바른길로 이끌기보다 자기가 속한 편의 이익을 더 생각하는 세태를 꼬집은 것이다. 개인 생활에서도 각종 사기가 난무하고 내 이익을 위해 남의 피해를 당연시하는 세태를 지적한 말이다. 논어에서 말하는 ‘정당하게 얻은 부귀가 아니면 취하지 않는다’라는 견리사의(見利思義)와는 대조적인 표현이다. 견리망의하는 이들 가운데 국가가 위태로워지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사람이 있을까?1)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견리사의 견위수명’ 유묵

앵두를 좋아하는 임금이 있었다. 어느 해 겨울, 임금이 갑자기 앵두를 찾았다. 한겨울에 어떻게 앵두를 구할 수 있겠는가. 나라에서 큰 상을 걸고 앵두를 구했다. 이 소식을 들은 어느 상인이 술에 담가둔 앵두를 꺼내 물로 깨끗이 씻어 싱싱한 앵두처럼 진상했다. 상인은 상을 받자마자 사실이 밝혀져 처벌받을 게 두려워 멀리 도망쳤다. 이처럼 ‘잘못을 저지르고 어디론지 자취를 감춘 사람’을 ‘앵두장수’라고 부른다. 달아나 버린 앵두장수가 견리망의하는 사람들보다는 차라리 더 나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교수들이 추천한 2023년 사자성어 중에는 남우충수(濫竽充數)도 있다. 피리를 불 줄도 모르면서 함부로 피리 부는 악사들 틈에 끼어 인원수를 채우려는 사람을 뜻한다. 능력도 안 되면서 밥상에 숟가락 얹으려는 사람이 많았다는 뜻이니 견리망의와 무슨 차이가 있을까? 문제는 이런 탐욕이 좋은 기운이 넘친다는 푸른 용의 해인 2024년에도 계속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자칫하다 송도 오이장수2)처럼 남의 말에 이끌려 다니다 무능력자가 끼어드는 것을 모르고 낭패를 보는 해가 될까 걱정이 앞선다.


송도 오이장수와는 반대로 남의 말을 전혀 듣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용과 관련된 한자어로 롱(聾)이 있다. 귀(耳) 위에 용(龍)이 올라앉은 형상이다. 용은 세상에서 가장 권위 있는 영물이어서 남의 말을 전혀 듣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롱(聾)은 ‘청각장애인’이라는 뜻으로도 쓰이고, ‘어리석다’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앵두장수와 오이장수가 기승을 부릴지도 모르는 2024년에 어리석은 용까지 가세한다면? 상상하기도 싫다.



용은 상상의 동물이며 턱 밑에 신비한 능력을 갖춘 여의주(如意珠)를 지닌 영물로 여겨왔다. 하늘과 땅, 물속을 자유자재로 넘나들고, 여의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존재가 용이다. 그런 용이 푸른색을 만났다. 오행에서 푸른색은 생명의 시작을 알리는 동쪽(봄)을 상징한다. 영물인 용이 푸른색을 만났으니 2024년은 좋은 기운이 넘칠 수밖에 없다. 희망을 싹틔울 수 있는 해다. 용과 관련된 사자성어 가운데 일용일저(一龍一猪)라는 말이 있다. 노력하기에 따라 용이 될 수도, 돼지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올해에는 노력의 결과로 모두가 용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행운이 넘치는 해에 행여 어리석은 용이 나타나지 않도록 롱(聾)이라는 한자는 숨겨두자. 그게 어려우면 귀(耳) 위에 올라앉은 용(龍)을 귀밑으로 내려오게 하면 어떨까? 그렇게 해서라도 교룡(용의 새끼)이 비구름을 만나 하늘로 비상하기에 좋은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주1)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 논어 헌문편에 나오는 말로 눈앞에 이익이 보이면 옳은 것인가를 생각하고, 국가가 위태로운 것을 보면 목숨을 바친다는 뜻이다. 안중근 의사가 여순 감옥에서 쓴 글귀로 유명해졌다.


주2) 송도에 살던 오이 장수가 서울의 오이 가격이 크게 올랐다는 말을 듣고 오이를 싣고 서울로 갔다. 그가 서울에 도착하자 오이 가격이 폭락했다. 의주의 오이 시세가 좋다는 말을 듣고 의주로 향했지만 오이 가격이 또 내려갔다. 결국 오이를 하나도 팔지 못하고 송도로 돌아왔고, 오이는 모두 곯아 쓸모가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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