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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맞았습니다

by 아마도난

성큼 다가 온 추위 탓에 이불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운 아침, 꼭두새벽에 툴툴거리며 집을 나섰다. 『매월당 김시습 기념사업회』라는 긴 이름을 가진 단체에서 역사기행을 떠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사실 꽤 오래전부터 이 단체의 초청을 받았지만 그동안에는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며 참가하지 않았다. 마음이 변한 것은 뿌리칠 수 없는 미끼를 던졌기 때문이다. 익산 미륵사와 왕궁리 유적 그리고 가람문학관을 둘러볼 예정이라며 또다시 참여를 권유해 온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왕궁리 유적을 돌아보고 싶었는데 구미에 맞는 미끼를 던진 것이다.





약속시간이 되지도 않았는데 버스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있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도착한 것이다. 이런 정성 들이라니…. 버스에 오르니 나를 초청한 사람이 어느 여자분 옆자리로 안내해 주었다. 그녀는 수인사가 끝나자 『울림』이라는 제목이 붙은 작은 시집을 건네주었다. 시인이었다. 고맙다는 말을 하며 표지를 넘겨 약력을 읽었다. 말미에 대학원에 재학 중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살펴봐도 내 또랜데 대학원에 재학 중이라니? 흥미로웠다. 이른 아침부터 꽉 막힌 고속도로를 보며 대학원에 다니는 이유를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그녀는 이미 대학원에서 동양철학을 마치고 서양철학을 시작했는데 대부분의 책이 원서로 되어 있어 이해하기가 너무 어렵더라고 했다. 그녀는 부족한 영어를 극복하려고 영국으로 9개월간의 어학연수를 떠날 예정이라고 했다.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며 나도 모르게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녀도 나를 보며 보일 듯 말 듯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화제를 돌려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남부럽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나 좋은 남자 만나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는데 그녀의 나이가 30을 넘어갈 무렵 남편이 덜컥 병에 걸려 오랫동안 병석에 누웠다고 했다. 어린 두 아이를 보살피며 오랫동안 간병하다 지쳐버린 그녀가 말 한마디 못하고 누워만 있는 남편에게 푸념하듯 먼 곳을 바라보며 얘기했더란다.


“애들 걱정하지 마요. 내가 어떻게든 키울 테니 염려하지 말아요.”


말을 마치고 남편을 보니 뜻밖에도 그의 얼굴에 눈물자국이 있더란다. 누워서 말은 고사하고 감정표현 한 번 못하던 남편이 울었더라는 것이다.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던 그녀가 고개를 돌리며 잠시 말을 끊더니 작은 목소리로 했다.


“다음 날 남편이 죽었어요. 아이들 때문에 숨을 못 놓다가 내가 다짐하는 말을 듣고 안심이 됐나 봐요.”


독백인 듯 들으라는 듯 얘기를 하던 그녀가 계면쩍은 표정으로 나를 보며 었다.


“내가 너무 말이 많죠?”


“그렇게 젊은 나이에 어린아이들 하고 힘들었겠습니다.”


“제가 낯선 사람에게는 말을 잘 않는 편인데 작가님이라고 해서 편한 생각이 들었나 봐요.”


“작가가 뭐 대순 가요?”


“작가님들은 마음이 순수하잖아요. 남을 감동시키는 글을 쓰는 사람들인데 순수하지 않겠어요?”


말을 마치며 그녀가 예의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정면으로 바라봤다. 순간 그 눈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아 고개를 돌렸다. 순수하지 않은 내 마음이 드러날 것만 같아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차에 오르자 그녀가 말했다.


“날씨가 추워 롱 패딩을 입고 왔는데 차 안에서 입고 있을 수도 없고 벗어놓으려니 작가님을 불편하게 해서 안 되겠어요. 다음번에 버스가 서면 다른 자리로 옮기겠습니다.”


순간 내가 무례한 짓을 했나? 아니면 나하고 대화하는 게 지루하거나 유쾌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들이 스쳐갔다. 미륵사지를 돌아보고 버스에 올랐을 때 이미 그녀는 짐을 챙겨 다른 자리로 옮겨갔다. 인솔자가 탑승인원을 확인할 때 내 뒷자리에 있던 사람이 내 옆자리가 비었다고 걱정하기에 “소박맞았습니다.” 하고 웃으며 대답했다. 그 시간 이후 내 호칭은 ‘소박데기’가 되었다.






그녀가 자리를 옮긴 것이 호의에서 비롯했다는 것은 가람문학관에서 알게 됐다. 하루 종일 여러 곳을 방문하다 보니 피로가 전신을 엄습해 왔다. 지친 다리로 문학관을 관람하고 있는데 그녀가 나를 발견하고는 잠시 쉬라며 의자를 권했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그녀 앞에 앉자 예의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했다.


“큰 아이는 얼마 전에 결혼시켰어요. 작은 딸아이는 지금 영국의 어느 병원에서 인턴으로 근무하고 있구요.”


“따님이 영국에 있어 그곳으로 어학연수를 가는군요?”


하고 반문하자 그녀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공부도 하고 딸도 보살피러 먼길을 나서려는 것이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고속도로는 꽤 붐볐다. 하지만 지루할 틈이 없었다. ‘소박데기’가 불쌍해 보였는지 간식을 가져다주는 사람들이 많아 그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그녀도 잘 있나 싶어 슬쩍 뒤쪽을 보니 졸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하긴 피곤할 만도 하지. 어느덧 나도 잠에 빠져버렸다. 서울에 거의 도착할 무렵 핸드폰에 문자가 왔다는 표식이 떴다.


“오늘 하루 즐거웠습니다. 이 번호를 저장해 주세요. 영국 다녀와서 꼭 만나고 싶습니다.”


그 메시지를 보는 순간 “아! 내가 소박맞은 게 아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며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시 그녀에게 회신을 보냈다.


“영국 잘 다녀오십시오. 그리고 다녀와서 다시 만날 수 있는 행운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녀의 첫 번째 시집은 『나, 어머니로 태어나 아버지로 살았네』였다. 남편과 사별하고 어린아이들을 혼자 키우느라 식당일부터 안 해본 것이 없다고 했다. 그렇게 살면서도 틈틈이 시를 쓰고 그것을 모아 시집을 낸 것이다. 남편과 약속한 대로 아이들을 잘 키워냈으니 이제부터 홀가분하게 자기의 인생을 살려고 한다고 했다. 일행들과 헤어져 집으로 가는 내내 작은 체구에 롱 패딩을 입은 이 여자가 남긴 말이 귓전에 맴았다.


“절실하게 원하면 못 할 일이 없어요. 작가님도 새로운 도전을 해 보세요.”


내게 소박을 놓은 이 여자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도록 같이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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