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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도난 Jun 16. 2024

고려장이라니

소리꾼 장사익의 노래 「꽃구경」은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돌아갈 길 걱정이구나 산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라는 노랫말로 끝난다. 아들은 늙고 병든 어머니를 깊은 산에 버리려 하고, 어머니는 자기를 버리고 돌아가는 아들이 길을 잃을까 걱정하는 노래다. 소위 ‘고려장’을 소재로 한 시인 김형영의 「따뜻한 봄날」에 장사익의 구성진 소리가 어우러진 명곡이다.


늙은 부모를 버리는 이야기는 세계 곳곳에서 전해온다. 기로전설(棄老傳說)이다. 우리나라의 고려장(高麗葬)도 기로전설의 하나다. 그렇다면 고려 시대에 늙은 부모를 버리는 풍습이 진짜 있었을까? 고려 시대에는 ‘불효 죄’를 최고의 형벌로 다루었다. 조부모나 부모가 살아있는데 아들과 손자가 재산을 달리하고 공양을 하지 않을 때는 징역 2년에 처했다는 것이다. 조선 시대에는 고려 시대 ‘불효 죄’보다 적용 범위를 넓힌 ‘강상죄’가 있었다. 이런 처벌이 아니더라도 농업사회는 경험이 중요했기 때문에 나이 든 사람들을 오히려 존경했다. 기로 현상은 자연환경이 척박하거나 전란이 끊이지 않아 식량난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에 존재하지 않은 ‘고려장’이 실제 있었던 풍습인 양 인식된 배경은 무엇일까?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우리나라의 묘지를 도굴하기 위한 명분으로 우리 조상들을 패륜아로 몰았기 때문이다. 1924년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조선 동화집』에 「부모를 버린 남자」를 소개하면서 고려장이 실제로 존재한 것처럼 인식시킨 것이다. 오히려 기로 현상은 일본에서 광범위하게 존재한 듯하다. 끊임없는 전쟁으로 혹은 흉년으로 식량이 부족해지면서 식구의 입을 줄이기 위해 고령의 부모를 산에 버리게 된 아들과 그 부모의 이야기인 우바스테야마(姥捨て山, 할머니를 갖다 버리는 산)가 그 예다.

일본이 마치 우리의 악습인 양 퍼뜨린 고려장. 그 고려장을 주제로 한 장사익의 「꽃구경」은 언제 들어도 눈물 날만큼 좋은 노래다. 다만 고려장이 아니고 ‘어머니의 사랑’이 주제라면 더더욱 아름다운 노래였을 텐데. 어쩌면 장사익도 어머니의 사랑을 강조하려고 그렇게 노래했는지도 모른다. 『조선 동화집』에 수록된 「부모를 버린 남자」는 마음을 바꾸어 아버지를 집으로 모셔왔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애당초 부모를 버리려는 패륜을 저지르지 않았다. 누구도 ‘불효 죄’나 ‘강상죄’를 범하지 않았다.


어머니를 집에서 모시다가 치매가 심해지면서 부득이 요양원으로 옮겼다. 장사익이 노래한 어머니처럼 아들이 미안해하지 않도록 배려한 것인지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소리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상태가 더 나빠지면서 요양병원으로 옮겼다. 거동은 고사하고 말씀도 못 하시는 어머니를…. 과연 나는 강상죄를 범하고 있는 걸까?


10여 년 전, 어머니는 ‘요양원에는 절대로 가지 않겠다. 요양원은 고려장이다.’라는 말을 하곤 했다. 친구들 생각도 비슷하다고 했다. 늙어서 거동이 불편해지더라도 요양원으로 보내지 말라는, 버리지 말라는 부탁의 다른 말이었을 것이다. 그런 어머니를 요양원을 넘어 요양병원에 모시고 있다. 비록 집에서 멀지 않은 요양병원에 모셔두고 일주일에 한두 번은 찾아뵙고 있으나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다.


어머니가 고려장이라고 불렀던 요양원. 역설적으로 그 요양원이 없다면 얼마나 많은 가정이 어려움을 겪을까? 어머니가 원했던 곳은 아니어도 집보다는 나은 환경이라고 믿는다. 매일은 아니어도 자주 뵙고 있으니 고려장은 더더욱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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