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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도난 Jul 17. 2022

적응일까 배려일까?

요양원에 어머니를 모시기로 하고 나서도 마음은 여전히 분주했다. 이왕 입소하기로 했으니 잘 적응했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적응하지 못해 그냥 집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번갈아 떠올랐다. 한 발짝을 뗄 때마다 바뀌는 생각을 뿌리치고 어머니의 손을 요양원 관계자에게 넘겼다. 잘 적응하길 바라면서…. 관계자에게 언제부터 면회하는 게 좋은지 물었다. 그녀는 ‘어르신이 버림받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자주 면회하세요.’라고 대답했다. 주변에서 들은 조언과 다른 대답에 조금은 놀랐다. 어떤 이는 한 달 정도는 면회하지 말라고 했고 다른 이는 일주일 뒤라면 충분하다고 했는데…. 어느 요양원에서는 적응하는 상황을 봐서 면회 일정을 알려주겠다며 믿고 맡기라고도 했다. 사람마다, 시설마다 하는 말이 달라 마음이 무거웠는데 자주 오라는 말을 들으니 오히려 홀가분했다.


어머니를 요양원에 두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낯선 곳에서 잠 못 이루고 있을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밤이 깊도록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군대에 아들을 처음 보낸 어미의 잠자리도 이럴까? 모든 것이 궁금했다. 요양원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며 이틀이 지났다. 요양원 관계자로부터 자주 들르라는 말을 들었어도 면회가 조심스러웠다. 전화로 어머니 근황을 물었다. 잘 지내고 계신다는 요양보호사의 말에 안도하면서도 왠지 답변이 미덥지 않았다.


다음 날. 어머니를 보러 갔다. 요양원이 가까워질수록 마음은 무거워졌다. 요양보호사의 말과는 달리 집으로 가겠다고 우기지 않을까 걱정도 됐다. 면회 신청을 하고 잠시 기다리자 요양보호사의 손을 잡고 걸어오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불과 사흘이 지났을 뿐인데 낯설어 보였다. 어머니의 표정을 보며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요양원에 버려졌다고 생각해서 정신적 충격을 받았나? 그로 인해 인지능력이 급격히 나빠졌나? 바로 그때 요양보호사가 어머니에게 나를 가리키며 “누구예요?”하고 물었다. 조바심이 났다. 행여 모르는 사람이라고 할까 봐 겁도 났다. “아들!”이라는 대답에 마음이 놓였다. “이 사람은 누구예요?” 요양보호사가 아내를 가리키며 물었다. “동서.” 처음 대답은 그랬다. 요양보호사가 다시 묻자 “우리 며느리!”라고 정정했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아들과 며느리를 알아본 어머니가 “이렇게 우리 식구를 보니 너무 좋아!”라며 환하게 웃었다. 3일 만에 잡아보는 어머니의 손에서 따뜻한 온기가 전해왔다.

“여기 어때요?”하고 묻자 “좋아. 아주 좋아. 선생님들도 친절하고 좋아.”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혹시 요양보호사의 눈치를 보고 있나 싶어 어머니의 태도를 살폈다. 어머니의 눈은 무심한 듯, 무엇을 보는지 알 수 없는 그런 눈이었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어린아이의 눈이었다. 요양보호사에게 “잘 적응하고 계신가요?” 하고 묻자 그녀는 “네, 잘 적응하세요. 그런데 배회하는 버릇이 있어서 저희가 바쁜 때에는 어머니를 조금 통제해요.”라고 대답했다. 집에서도 있었던 습관이니 새삼스럽지 않았다. 다시 어머니에게 물었다. “여기가 좋아요? 집이 좋아요?” 어머니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여기가 좋아.”라고 대답했다. 그 대답을 듣자 공연히 눈물이 핑 돌았다. 정말로 요양원이 좋아서 그렇다고 해도 슬픈 일이고, 잠시 정신이 맑아져서 아들을 위로하느라 그랬다면 더욱 가슴 아픈 일이기 때문이다.


며칠 뒤. 다시 어머니를 면회했다. 어머니는 여전히 “여기가 좋아.”라고 대답했다. 이번에는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적응을 한 것이든 배려를 하는 것이든 무탈하게 지내고 있다는 표시니까…. 잘 적응하고 있다는 판단이 서니 이제는 아들을 못 알아볼까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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