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던 어머니가 허리가 아프다며 도로 누웠다. 날이 갈수록 어린아이처럼 떼를 쓰기도 하고, 늘 다니는 주간보호센터도 가지 않으려고 하는 일이 많아 꾀를 부리는 줄 알았다. 긴가민가해서 조심스럽게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넣어 일으키려니 “아야!”라며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여전히 미덥지 않았지만 혹시 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일으켜 세우고 발을 떼게 했다. 엉거주춤했다. 탈 났구나 싶어 주간보호센터를 결석하고 정형외과로 모셨다.
이미 몇 달 전에 다녀온 병원이었다. 의사는 X 레이 사진을 살피더니 노화 때문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MRI라도 찍어보자고 했더니 굳이 찍을 필요 없다는 것이다. 몇 달 전에 찍은 X 레이 사진과 이번에 찍은 사진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무리하게 MRI를 권하는 병원도 있는데 이런 병원도 있구나 싶어 고맙기도 했다. 그러니 병원 대기실이 환자로 가득하지…. 의사는 힘들더라도 걷는 게 좋으니 눕지 않도록 하고, 휠체어 대신 워커를 이용하라고 권유했다. 의사는 심각한 부상이 아니라는데 병원을 나서는 어머니는 아프다며 아예 발을 떼지 못했다. 주간보호센터 대신 집으로 모셔왔다.
스스로 걷지 못하면서도 어머니는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집에만 있으려면 답답하겠다 싶어 의사의 권고대로 워커를 이용해 산책하기로 했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어머니는 워커를 잡고 걷기는커녕 서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업고 나갈 수도 없고….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니 어머니는 욕을 하며 기어서 나가려고 했다. 밖으로 나갈 수도, 집에 머물 수도 없는 답답한 상황에서 온종일 어머니와 전쟁 아닌 전쟁(?)을 치러야 했다. 결국 휠체어를 빌렸다. 밖으로 나오자 어머니는 마치 놀이동산에 온 아이처럼 활짝 웃었다. 바깥바람에 기분이 좋아지고, 휠체어에 앉아 이동하며 신이 난 듯 손을 흔들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오면 다시 나가자고 졸랐고, 요청을 뿌리치면 욕을 하고 떼를 써서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가는 일이 반복됐다. 허리 통증이 완화되어 주간보호센터에 다시 나갈 수 있을 때까지 휠체어 산책이 계속됐다.
며칠 후, 어머니의 허리 통증이 사라졌다. 대신 어머니의 인지능력이 눈에 띄게 나빠졌다. 자식들을 혼동하는 일이 더욱 잦아지고, 밤에는 잠 대신 온 집안을 배회하며 지샜다. 요양원으로 모시는 문제를 상의하려고 형제들이 다시 모였다. 처음 이 문제를 상의할 때 반대했던 형제들도 모두 동의했다. 서울 시내에 있는 요양원들을 수소문한 끝에 가족들이 쉽게 방문할 수 있는 곳으로 결정했다.
입소를 위한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검사항목이 많아 부득이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워야 했다. 순간 어머니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병원에 왜 왔는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휠체어에 탔다는 사실이 즐거운 듯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요양원에 도착했다. 행여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들었고, 힘이 들더라도 집에서 모셔야 하는 게 도리 아닐까 하는 후회도 들었다. 다행히 어머니는 별다른 거부감을 보이지 않고 요양보호사의 손을 잡고 생활실로 올라갔다. 그 모습을 보며 무거운 발걸음을 돌렸다.
입소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제법 요양원 생활에 익숙해질 만하다 싶어 요양보호사에게 어머니의 생활 태도를 물었다. 그녀는 ‘식사도 잘하시고 다른 분들과 대화도 하시며 잘 지내고 계세요. 다만 어르신이 배회하는 버릇이 있어 저희가 바쁠 때는 휠체어에 앉혀드리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꼼짝하지 못하도록 휠체어에 가둔다는 의미가 아닌가? 일어서기만 해도 벗어날 수 있는 단순한 기계에 우두커니 앉아 있을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안타까웠다. 휠체어에 타는 것을 좋아했는데 이제는 거꾸로 휠체어에 앉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