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마도난 Jul 21. 2019

흔적

낯설다. 뭔지 모르지만 전과는 분명히 뭔가가 달라졌다. 고향 집 대문을 지나 2층에 있는 거실로 올라가면서 어색함 때문에 고개를 갸웃갸웃하고 있었지만 낯선 느낌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아채지 못했다.


그 ‘낯 설음’은 오래지 않아 베일을 벗었다. 어머니는 내 인사를 받고 나서 밑도 끝도 없이‘그눔 참 싸가지 없어.’ 하고 누군가에게 욕부터 했다. 어머니를 화나게 한 ‘싸가지 없는 놈’은 마당에 있 감나무를 밑동부터 잘라 버린 사람이었다. 그제야 나를 그토록 낯설게 한 것도 바로 이것이었구나 하고 알아챘다. 보기 좋은 나무는 아니었지만 한 해 걸러 흐드러지게 감을 달고 있던 나무였다. 때로 풍성한 감을 따는 재미를 주기도 했고, 때로는 옆집 베란다까지 뻗은 가지 때문에 이웃집의 불평을 듣게 하기도 한 나무였다. 그런 감나무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감나무뿐만이 아니었다. 화단 곳곳에 있던 나무들이 비슷한 꼴을 당했다. 처음에 낯설다고 느꼈던 그 감정은 분노로 바뀌더니 나중에는 체념과 함께 주저앉아 버렸다. 그리고 나도 한마디 했다. “그 친구 그렇게 안 봤는데 진짜 싸가지 없네!”





 
아버지는 맨 주먹으로 부여에 나와 서점을 시작했다. 가진 게 없 매일 오전 20여 Km 떨어진 논산에 가서 다음날 오전까지 팔 책 두세 박스를 자전거에 실어 왔는데, 다행히(?) 책이 잘 팔린 날은 하루에 논산을 두 번 다녀오기도 했다. 때로는 자전거가 넘어져서 다치기도 하고, 눈이 오는 날은 짐이 실린 자전거를 끌고 걸어서 집에 오기도 하며 가족들을 먹여 살리려고 애를 썼다. 그렇게 십 수년을 노력한 끝에 번듯한 집을 짓게 되었다.




그 집에는 아버지의 땀과 꿈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었다. 집을 지으면서 2층 한쪽에는 멋진 서재를 마련하여 언제든지 친구분들이 찾아와 놀 수 있게 하였다. (덕택에 나와 동생들은 담배 심부름을 참으로 많이도 했다.) 건물 외관과 화단에도 적지 않은 투자를 했다. 그 시절에는 화단을 만들기 위해 돈을 쓰는 게 흔치 않았던 일이었는데도 큰돈을 들여 조경석과 나무를 구입하여 화단을 꾸미도록 했다. 그렇게 공을 들여지어 놓으니 예쁜 집으로 소문이 났다. 우리 집을 배경으로 부여를 방문한 외국인 여행객들이 종종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세월에는 장사가 없다더니 영원히 변치 않을 것 같던 우리 집도 낡은 태를 보이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나이가 들고, 자식들은 객지에 나가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집을 관리할 사람이 없어 정원은 아름다움을 잃기 시작했다. 필요에 따라 건물 여기저기에 손을 대다 보니 처음의 그 모습은 간데없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집이 되어 버렸다. 멋지고 예뻤던 집이 낡고 평범한 집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웃에 사는 사람들도 아쉬웠는지 “옛날에는 참 멋진 집이었는데……” 라든가 “이 집 지을 때 아버지가 공을 많이 들였는데……” 하는 말을 곧잘 건네곤 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맞아요. 예전에는 그랬어요.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옛 기억을 더듬다.





아버지가 가족의 곁을 영영 떠나고 어머니 혼자 남게 되면서 집을 처분하기로 했다. 38년 동안 우리 가족들의 땀과 꿈 그리고 추억이 서리서리 담겨 있는 집을 팔기로 한 것이다.  우리에게 추억이었고, 땀의 결정체였집을 팔기로 결정하니 팔린 것이 아닌데도 섭섭한 마음이 앞섰다. 그래서였을까? 집값을 흥정하려 드는 사람에게는 말도 붙이지 못하게 했다. 그저 우리가 팔려는 가격에 살 사람이 나타나기만 기다렸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 현금을 들고 와서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잔금 받았지만 이사 날짜가 맞지 않아 4일을 더 살다가 이사하게 됐다. 그런데 집을 산 사람이 잔금을 받은 다음 날 감나무를 베어 버린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작은 관상목들도 마구 베어 버렸다. 나는 나무가 완전히 잘린 다음에야 고향집에 가서 봤지만 어머니는 나무가 잘려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던가 보다. 사지육신이 잘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며 “그눔 참 싸가지 없어. 우리가 이사 간 다음에 잘라도 되잖여. 뭐가 그리 급하다고 자르고 지랄이여.” 많이 섭섭했나 보다. 평소 욕을 하지 않던 어머니가 거친 말을 한다. “그래도 대추나무는 안 볐어. 내가 가을에 따러 온다고 했거든.” 대추나무 덕택에 ‘참’ 싸가지 없던 눔이 ‘그냥’ 싸가지 없는 눔이 되었다. 


그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정원의 나무들을 베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나무들은 우리 식구들이 어린 시절부터 나이가 제법 든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을 지켜본 산 증인이었다. 정원 곳곳에 우리 추억이며 흔적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사를 마치고 짐을 정리하다 오래된 사진들을 보게 되었다. 교복을 입고 정원에서 폼 잡고 찍은 사진이며, 가족들과 함께 나무들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들이 솔찬히 나온다. “그래 이게 우리 집이었지.” 하는 소리가 입술 사이로 신음처럼 새어 나다.




‘참 싸가지 없는 눔’은 소유권을 넘겨받은 다음 날 우리 식구들의 흔적을 지워 버렸다. 앞으로 더 많은 흔적들이 지워져 나가겠지. “그냥 집을 지킬 걸 괜히 팔았어!” 하는 후회와 더불어 아버지한테 죄를 짓는 기분이 들었다. 그나저나 앞으로 그 집 앞으로 발길이 향하기나 할는지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하마터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