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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도난 Jun 03. 2019

하마터면

치매와의 전쟁 서곡

폭염경보가 내려진 7월의 어느 날 정오 무렵. 어머니가 “나 경로당에 갔다 올게.” 하며 집을 나섰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날씨에 긴소매의 바람막이를 입고 반말은 됨직한 강낭콩이 담긴 쇼핑백을 들었다. “이 시간에 경로당에는 왜 가시는데요?”하고 묻자 4시에 에어로빅 선생님이 오시기 때문에 미리 가서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콩은 뭐 하게?” 하니 “총무 주려고.”하고 대답한다.


집에서 경로당까지는 어머니 걸음으로도 10분이 안 걸리는 가까운 거리였지만 폭염경보가 내린 날씨에 무거운 콩을 들고 길을 나서는 것은 온당치 않았다. 점심시간이라 사람이 나와 있는 것은 고사하고 문도 안 열었을 테니 헛걸음하기 십상이기도 했다. 점심 드시고 3시 넘어가라고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터무니없이 고집을 부리니 나도 모르게 욱하고 화가 치밀어 심한 소리를 하고 말았다. 그 소리에 어머니도 화가 났는지 더 고집을 부렸다. 한동안 달래기도 하고 화도 내봤지만 고집을 꺾을 수 없어 차로 어머니를 모시고 경로당에 갔다. 예상했던 대로 경로당 문은 단단하게 잠겨 있었다.





시간은 1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점심을 해결해야 했다. 마음 상한 어머니를 달래 식당으로 갔다. 어머니는 두어 번 젓가락질을 하더니 갑자기 밖으로 나갔다. 당황해서 어머니의 소지품을 챙겨 들고 부리나케 따라나섰더니 망연한 표정으로 식당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어머니를 달래 차에 오르게 한 뒤 “무량사 갑시다.”하고 말을 건네니 “그곳엔 왜 가?”하고 퉁명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그냥 바람이나 쐬다 오게.”하고 대답하자 드디어 말문이 터졌는지 마구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어떤 놈이 주모해서 나를 절에다 팔아먹었어?” 몹시 분개한 목소리였다.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도대체 어떤 놈이 나를 이렇게 만든 거여? 아침부터 여러 중들이 번갈아 나와 염불을 하고 시끄럽게 구느냔 말이여?”하며 언성을 높였다. 오랫동안 불심(佛心)을 키워온 어머니를 위해 TV에 켜짐을 설정하면서 불교방송이 나오도록 했는데 이것을 트집 잡은 것이다.


문득 저렇게 분노하다 운전하는 나에게 상해를 입히려고 달려들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차의 속도도 줄였다. 잠시 후 주제가 바뀌었다. “지난번에는 내가 낳지도 않은 딸을 낳아 길렀다고 하더니 이게 뭐여? 사람을 왜 이렇게 만드느냔 말이여?” 하며 다시 언성을 높였다.


두 달 전, 미국에 사는 여동생이 어머니를 찾아오자 처음에는 무척 반기더니 갑자기 내 딸이 아니라고, 누군지 모르는 여자를 왜 내 딸이라고 하느냐며 역정을 냈었다. 여동생이 미국으로 돌아간 지 한 달이 돼 가는데 다시 그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내가 어머니의 말에 아무 반응을 안 보이자 사람 무시한다며 역정이었다. 왜 아무 말도 않느냐고 화를 내며 내 얼굴을 빤히 보다 돌아가신 아버지로 착각하고 어디 갔다 이제 왔느냐고 따졌다. 또 숙부로 착각하고 왜 왔느냐고 묻기도 했다. 덕택에 나는 둔갑술을 하는 초능력자가 되었다.





보건소의 복지사가 어머니는 그 나름의 세계에서 살고 계시니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조언했다. 그 말이 맞을 거라고 수긍했다. 하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복지사는 정신이 온전한 사람들이 이해하고 달래며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위로도 했다. 그 또한 겉도는 조언이었다. 무량사까지 가는 20여분 동안 어머니는 수없이 많은 대못을 내 가슴에 박았다. 마치 가슴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것을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박고 또 박았다.


한참 동안 독한 말을 쏟아내던 어머니의 태도는 무량사에 가까워지면서 조금씩 바뀌었다. 처음에는 “절에 가도 부처님한테 인사 안 혀.” 하더니 “부처님한테 큰 절 안 하고 반절할 거야.”하고 누그러졌다. 무량사에 도착했다. 어머니는 곧장 극락전에 들어 불전 함에 시주하고 절을 올리기 시작했다. 정성껏 불공을 드리고 난 어머니의 얼굴 표정은 매우 부드러웠다. “하고 싶은 얘기를 모두 부처님께 하고 나니 속이 시원하세요?” 하고 물었더니 “개운 햐!”하며 만족스러워했다.




무량사에 있는 여러 전각들을 모두 돌아보고 나오다 템플스테이를 광고하는 플래카드를 봤다. 그곳에는 ‘하마터면 미워할 뻔했습니다. 용서’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플래카드를 보며 ‘하마터면…, 하마터면….’하고 한참을 속으로 되뇌다 조용히 돌아섰다. 하마터면 쏟아지는 눈물을 어머니에게 보일 뻔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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