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이 세상 소풍을 끝내고 다른 세상으로 여행을 떠난 지 어느덧 49일. 불가의 49재(齋)가 끝나는 날이다. 이승을 떠난 영가는 다음 생의 생명을 받을 때까지 중음(中陰)의 세계에 들어 일곱 시왕에게 이레씩, 최대 49일 동안 심판을 받는다고 한다. 그동안 다음 생에서 좋은 연을 받을 수 있도록 7일마다 불경을 읽고 부처님께 공양하는 의식을 치르기 때문에 칠칠재(七七齋)라고도 한다.
혹시 불심이 깊었던 어머니는 강림도령과 함께 이승의 끝인 헹기못으로 가는 대신 이승과 저승의 경계라는 불가의 삼도천으로 가신 것은 아닐까? 삼도천 강가에는 부모와 자식의 인연이 두텁지 못해 어려서 죽은 갓난아기 영가(靈駕)나, 햇빛도 보지 못하고 엄마의 뱃속에서 죽은 핏덩이 영가들로 북적인다는데…. 영가들은 삼도천의 사공에게 치를 뱃삯이 없어 부처님의 공덕에 기대어 강을 건너려고 고사리손으로 돌탑을 쌓고 있다지? 영가들이 힘들여 돌탑을 쌓으면 저승사자들이 몰려와 무너뜨리고, 다시 돌탑을 쌓으면 저승사자들이 또 무너뜨린다고 한다. 영가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저승사자들은 이토록 모진 짓을 할까? 무너진 돌탑을 보며 영가들은 서럽게 울다 지쳐서 잠이 들고, 깨어나면 다시 기약 없는 돌탑을 쌓는다는데.
돌탑을 쌓고 있는 어린 영가들을 어머니가 어찌 그냥 지나치실까?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한 명, 한 명 보듬어주고 위로해 줄 게 분명하다. 그러다 시간을 지체하여 일곱 시왕에게 가지 못하면 이승에 머물 수도 없고 다음 세상으로 갈 수도 없는 곤란한 처지가 될 텐데…. “어머니, 어린 영가들은 태안지장보살(胎安地藏菩薩)에게 맡기시고 삼도천을 건너세요. 노잣돈도 넉넉히 넣어드렸으니 뱃삯으로 부족하지 않을 겁니다.”
중음에 든 영가들이 모두 일곱 시왕에게 심판을 받는 것은 아니란다. 이승에서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으며 흉악하게 산 영가는 곧바로 지옥에 떨어지고, 흠잡을 데 없이 착하게 산 영가는 천상이나 다른 세상으로 곧바로 간다고 한다. 어머니는 18첩을 두며 산 강림도령처럼 방탕하게 살지 않았고, 남편의 재산을 빼앗은 것으로 모자라 본부인인 조왕신을 죽였다가 그 아들들에게 징벌당하여 측간(화장실) 귀신이 된 노일제대귀일의 딸처럼 요사스럽고 못되게 살지도 않았다. 그뿐인가? 용이 되어 승천하려고 여의주를 두 개나 쥐고 있는 청수 바다의 이무기처럼 욕심 많은 삶을 살지도 않았다. 그보다는 욕심을 버리고 여의주 하나를 다른 이에게 주라고 충고하여 이무기를 용으로 승천하게 한 오늘이처럼 많은 이들을 도와주는 삶을 살지 않았던가? 이러니 일곱 시왕이 무슨 트집을 잡겠는가? 아니 일곱 시왕에게 심판받을 필요나 있겠는가?
오랫동안 불사에 많은 시주를 하며 어머니가 불심을 키워온 절의 스님은 49재를 권했지만 완곡하게 물리치고 천불전에 부처님을 모셨다. 부처님을 모신 뒤 스님에게 어머니를 대신하는 부처님은 누구냐고 물었다. 스님은 공손히 합장하며 “선정불(禪定佛)이에요.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렇지! 스님도 우리 어머니를 잘 아시는구나. 이미 깨달음을 얻었는데 무슨 심판을 받겠다고 일곱 시왕 앞으로 간단 말인가? 어쩌면 이미 다음 생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당금아기님은 틀림없이 우리 어머니를 좋은 곳에서 사랑받는 사람으로 태어나도록 점지하셨겠지요? 한 가지 축원을 더 드립니다. 평생 행복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보살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