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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자

by 아마도난

젊고 매력적인 손님이 찾아왔다. 그녀는 거실에 들어서더니 인사도 나누기 전에 집안부터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마치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다 알아야겠다는 것처럼…. 그녀는 내 첫 번째 책을 출간했을 때 취재하려고 찾아온 월간지 기자였다. 잠시 후, 그녀는 책을 집필한 서재를 보여달라고 했다. 서재? 내겐 그런 공간이 따로 없는데 어쩌나? 서재가 없다는 말에 그녀는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자기가 근무하는 잡지사의 명성에 어울리는 멋진 공간을 담을 사진이 없다는 사실에 당황한 듯했다. 그녀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아이들이 쓰던 방의 책상과 책장을 그대로 두었는데 그곳 가운데 한 곳을 내 서재인 양 찍겠다고 했다. 아이들이 주로 보던 책을 빼고 내가 읽은 책을 중심으로 책장을 다시 꾸미고, 책상의 위치도 바꾸는 둥 소란을 피운 끝에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나의 ‘집필 공간’이란다. 사진 속의 집필 공간은 근사했다. 역시 전문가다.

그녀가 떠난 후 가슴에 바람이 가득 들어찼다. 머리가 분주해졌다. ‘작가’라는 칭호에 걸맞은 서재를 마련해야 한다는 초조함이 생긴 것이다. 어느 방을 서재로 만들까? 책상과 책장은 중후한 목재 소재로 해야겠지? 책이 모자라 책장을 다 채우지 못하게 되면 어쩌지?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예상 비용도 뽑아봤다. ‘작가’의 품격에 맞는 서재를 꾸미려니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는 동안 다른 잡지사에서 연락이 왔다. ‘작가님, 작가님’하는 것으로 미루어 그녀 역시 ‘작가님의 서재’가 보고 싶은 듯했다. 그녀가 방문하기 전에 서둘러 서재를 꾸밀까 하다 서재가 없다고 먼저 말했다. 그녀는 그럴 수 있다는 듯 ‘그럼 도서관에서 글을 쓰시나요? 아니면 카페?’라며 속사포처럼 물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아하! 글은 서재에서만 쓰는 게 아니구나! 그날 인터뷰는 잡지사 사무실에서 이루어졌다.


내 집필 공간은 거실 소파 앞에 놓인 자그마한 책상이다. 가로 1m, 세로 50cm쯤 되는 테이블이 내 서재고 놀이터다. 노트북 컴퓨터 한 대 올려놓으면 꽉 차는 공간이지만 내게는 최적의 글쓰기 공간이다. 이 테이블 앞에 앉아 글을 쓰다 TV를 보기도 하고, 가족들과 대화도 한다. 작은 테이블이지만 나의 하루가 시작되고 마무리되는 소중한 공간인 셈이다. 단점이라면 책상 위에 엎드려 잘 수 없다는 점이랄까? 기자들을 만난 뒤 ‘작가님’에 걸맞은 서재를 꾸며볼까 했던 잠깐의 욕심도 이 테이블이 가진 마력을 넘지 못했다.

7년여 만에 핸드폰을 바꿨다. 엄청난 기술 진보가 있었다. 예전 핸드폰으로는 글감이 떠오르면 손가락으로 입력했는데 새 핸드폰은 음성으로도 가능했다. 스쳐 지나가는 글감을 하나도 놓치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마무리는 역시 나의 작은 테이블 위에서 이루어졌다. 이쯤 되면 녀석이 잘난 척하고 배짱을 튕길 만도 한데 전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게 마음에 들어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녀석과 글쓰기 삶을 같이하고 있다. 허접한 글도, 네이버나 다음에 소개되면서 조회 수가 10만이 넘는 글도 녀석과 함께했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글도 함께하게 되겠지? 공간은 작아도, 보기엔 소박해도 누가 뭐래도 녀석은 나의 창작 동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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