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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넉넉한

by 아마도난

족자카르타에 도착한 첫날에 우연히 들른 식당. 미식(美食) 국가로 알려진 인도네시아 음식은 내 입에도 잘 맞았고, 분위기도 정갈해서 이틀 뒤 저녁에 다시 들렀다. 마침 주말이어서 손님으로 북적였다. 한창 식사하고 있을 때 갑자기 어린아이 셋이 식당 안에서 뛰어놀기 시작했다. 이 안 되어 보이는, 3남매로 보이는 아이들이었다. 천방지축으로 식당 안을 뛰어다니는데 아무도 제지하는 사람이 없어 누군지 모를 부모를 떠올리며 혀를 찼다. 많은 사람이 식사하는 공간이니 한 번쯤 주의를 시키지….


식사를 마칠 무렵 부부 가수가 등장했다. 이렇게 예쁠 수가? 우리나라 탤런트 원진아를 닮은, 아니 수애를 더 닮은 여가수였다. 노래가 시작됐다. 목소리도 무척 매력적이다. 식사를 마치고 바로 일어서려던 계획을 바꾸어 끝까지 감상했다. 그녀의 노래를 들으며 내 발은 까닥까닥 박자를 맞추고, 머리도 뒤질세라 끄덕끄덕 리듬을 따라갔다. 자기 노래에 호응하는 관객이 있다는 사실이 기뻤는지 그녀도 연신 웃음 띤 얼굴로 나를 바라보더니 마침내 같이 노래하자며 손짓했다.

바로 그때, 천방지축으로 뛰어놀던 아이들 가운데 한 명이 간주 중에 여가수에게 다가가 응석 부렸고, 그녀는 사랑스러운 손길과 표정으로 아이를 안아주었다. 세 아이는 부부 가수의 자식들이었다. 아이들은 엄마가 노래할 때는 어딘가에서 조용히 있다가 간주 중이나 다음 곡으로 넘어가는 짧은 순간에만 엄마에게 다가간 것이다. 엄마는 그때마다 아이들을 안아주거나 뺨을 어루만지며 사랑을 표시하고…. 무슨 사정이 있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지 몰라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노래가 끝났다. 그녀에게 다가가 “Tonight is sweet like your voice and starry like your eyes!”라고 감상 소감을 전했다. 그녀도 매력적인 미소와 노래할 때처럼 달콤한 목소리로 “뜨리마 까시! (고맙습니다)”라며 허리를 숙였다. 덕택에 수애에게 인사받은 것처럼 기분 좋은 밤이 되었다.


인도네시아에는 픙아멘(Pengamen)이라는 거리의 악사가 있다. 반둥에서 그들을 처음 봤을 때는 말쑥하게 차려입은 거지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교통량이 많은 교차로에서 신호 대기 중인 차량에 다가가 기타, 바이올린 등으로 노래를 하거나 연주를 하며 돈을 받는 사람들이다. 족자카르타의 호텔 앞에도 여러 명이 한 팀으로 구성되어 앙클룽과 드럼을 연주하는 픙아멘이 있었다. 앙클룽은 대나무로 만든 인도네시아 전통악기로 앙클룽 공연장 겸 교육장인 반둥의 Saung Angklung Udjo에서 처음 봤다. 단순한 악기였지만 음색이 무척 맑고 청아했다.

그들의 음악은 앙클룽 때문인지 밝고 경쾌했다. 어느 이른 아침, 그들에게 앙클룽 연주를 들려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외국인이 앙클룽을 알아본 것이 반가웠는지 흔쾌히 수락했다. 그들은 티셔츠부터 갈아입었다. 비록 거리에서 연주하며 생계를 유지하지만 ‘우린 프로다!’라고 외치듯 똑같은 옷으로 바꿔 입은 것이다. 그들의 솜씨는 흠잡을 데 없었다. 반둥에 있는 Saung Angklung Udjo의 전문 앙클룽 연주자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손을 흔들며 그 자리를 떴다. “뜨리마 까시!”라고 외치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픙아멘들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은 자선단체에 기부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이 분야에서 2023년까지 6년간 내리 1위를 한 나라가 인도네시아였다. 수애를 닮은 가수의 얼굴에도, 앙클룽을 신명 나게 연주하는 픙아멘의 얼굴에도 그늘진 표정 대신 밝고 예쁜 미소가 피어있는 이유가 삶을 긍정적으로 대하기 때문인가 보다. 가진 것은 없어도 마음이 부자인 나라, 그 나라가 인도네시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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