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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소설

환향년(還鄕年)-5

by 아마도난

막돌은 모진 매를 맞고 창고에 갇혀 며칠을 굶어 몹시 야위어 있었다. 효종은 막돌에게 월선에 관해 물었고 그의 대답은 효생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면서 말했다.


“소인이 한양으로 돌아오기 직전에 기생 마님이 비단 주머니 하나를 주었습니다.”


“비단 주머니?”


월선은 한양으로 돌아간 여자들은 하나 같이 큰 시련을 겪고 있다며 효생도 고초를 겪다 묵던으로 돌아오려고 할지 모르니 그때 노잣돈으로 쓰라고 주었다는 것이다. 기방에 있을 때 효종이 도와줘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으니 그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고 싶었다는 것이다. 효종은 월선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지만, 동생을 도와준 그녀가 고마웠다. 효종은 잠시 뜸을 들인 뒤 막돌에게 말했다.


“아버님은 가문의 명예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인데 효생이 처신을 잘못해서 종마저 집안을 우습게 본다고 생각하고 계시다. 그러니 효생을 위해 이 집에서 나가거라.”


“소인은 서방님 집안을 우습게 여긴 적이 단 한 순간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씨를 위해서라면 불구덩이에 뛰어들라 한들 마다하겠습니까? 하지만 이 집에서 나갈 수는 없습니다, 서방님. 소인이 없으면 누가 아씨를 지켜줍니까? 소인은 아씨 곁을 떠날 수 없습니다. 그 말만은 거두어 주십시오.”


막돌의 얼굴에 분노가 피어올랐다. 가문의 명예만 생각하며 핏줄마저 죽음으로 몰아가는 강 대감이나 그의 가족이 미웠다. 효생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자기가 더 잘 안다고 생각했다. 묵던에 있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부모님 안위를 걱정하는 효생을 지켜봤다. 효생의 순결을 지키라는 기생 마님의 지시로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았기에 효생이 정조를 잃지 않았다는 것도 보증할 수 있었다. 그런 것도 모르면서 효생이 정조를 잃었다고 단정하는 강 대감과 가족들이 미웠다.


“아씨는 꿈에서도 그리던 집에 돌아왔는데 대감마님도 서방님들도 아씨가 정조를 잃은 여자라고 생각하시잖습니까? 서방님은 애써 순결을 지켜온 아씨가 얼마나 억울하고 답답해하는지 짐작이라도 하실 수 있습니까? 소인은 아씨를 생각하면 너무 불쌍하고 대감마님이나 서방님들을 보면 화가 납니다.”


“네 이놈, 말을 함부로 하는구나. 긴말할 것 없이 몸이 추슬러지는 대로 먼 곳으로 떠나거라. 하루라도 빨리, 멀면 멀수록 좋다. 효생일 위하는 네 정성이 갸륵하여 노비문서는 없애주마.”


효종의 말에 막돌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효생을 한 번만 만나게 해달라고 사정했다. 효생에게 아무 일도 없다는 것이 확인되면 떠나겠다고 했다. 하지만 효종은 효생과 막돌의 관계를 끊어 놔야겠다고 작정하고 매정하게 거절했다.


며칠이 지났다. 효생이 세상을 등지려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효생이 죽으면 나라에서 강씨 집안에 정려문을 내릴 것이라고도 했다. 정려문을 받으면 효생의 오라버니들의 벼슬길이 순탄할 것이라고 수군거렸다. 소문을 들은 막돌은 마음이 급해졌다. 먼발치에서라도 효생이 잘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막돌은 깊은 밤에 도둑고양이처럼 은밀하게 별당 담장의 그늘에 숨어 효생의 방을 살폈다. 그때 막돌의 귀에 처량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타향에서 절일(節日) 만나 고향 생각 간절한데

꾀꼬리는 아니 울고 제비는 날아가네

멀리 석실마을 송백당(松栢堂) 그 길에는

열 집 웃고 즐길 제 한 집만은 슬퍼하리



청나라와의 항쟁을 주장하다 묵던으로 끌려와 갖은 고초를 겪던 김상헌 대감이 고향을 그리며 읊던 시였다. 그 시를 효생도 고향 생각이 날 때마다 읊었다. 시를 읊으며 효생은 펑펑 울곤 했었다. 고향 생각에, 부모 형제가 보고 싶어 우는 효생을 막돌은 항상 안아주었다. 그런데…, 그렇게 그리던 고향에 돌아와서 이 시를 읊다니….


막돌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폭풍처럼 밀려오는 안타까움에 앞뒤 가리지 않고 ‘아씨!’ 하며 별당으로 뛰어들었다. 순간 별당 주위를 지키던 종들이 몰려와 막돌을 마당에 패대기치고 마구 몰매를 내리고는 강 대감 앞으로 끌고 갔다.


“네 이놈! 감히 종놈이 야심한 밤에 주인집 아씨의 방에 뛰어들다니 무서운 게 없는 모양이구나! 여봐라! 저놈에게 치도곤을 먹이고 창고에 가두어라. 날이 밝는 대로 놈의 죄를 빠짐없이 물으리라!”


강 대감이 노발대발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효생이 맨발로 뛰어와 엎드려 사정했다.


“아버님, 더는 집안 망신시키는 일이 없도록 이 밤이 가기 전에 소녀 자진하겠습니다. 대신 막돌은 풀어주십시오!”


“안 됩니다, 아씨. 아무 죄도 짓지 않았는데, 정절을 잃은 것도 아닌데 가볍게 목숨을 버리지 마십시오. 소인처럼 하찮은 놈 때문에 귀한 목숨 버리시면 안 됩니다!”


효생과 막돌의 행동에 강 대감이 더욱 분노했다. 그야말로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된 것이다. 강 대감은 몽둥이를 직접 들고 막돌을 사정없이 패는 한편 효생에게도 즉시 자진하라고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안방마님이 뛰쳐나오고 소식을 들은 효종이 달려왔지만 강 대감의 분노를 가라앉힐 수 없었다. 피투성이가 된 막돌은 창고에, 효생은 별채에 감금되면서 소동은 가라앉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목숨은 장담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계속)

(진주남강문단 21호, 20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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