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뇽, 수직의 요새와 수평의 단절

사랑, 여행 그리고 기억

by 아마도난

아비뇽 교황청의 성벽 앞에 서면 압도적인 수직의 견고함에 숨이 턱 막힌다. 14세기의 권위가 응축된 이 거대한 석조 요새는 하늘을 향해 오만하게 솟아 있으나, 그 내면은 고립된 자들의 처연한 유배지일 뿐이다. 중력에 저항하며 높게 쌓아 올린 성벽은 로마로 돌아가지 못한 교황들의 해묵은 향수를 가두는 거대한 감옥이었고, 그 위로 휘몰아치는 미스트랄은 차가운 석재 사이를 파고들며 닿지 못할 곳을 향한 탄식을 뱉어낸다. 높이 오를수록 고독은 깊어지고, 견고할수록 단절은 선명해진다.

성벽의 오만한 수직에 대비되는 것은 론강 위에 위태롭게 누운 성 베네제 다리다. 강 저편을 향해 뻗어 나가던 다리는 강 한복판에서 맥없이 끊겨 있다.

이 수평적 단절은 아비뇽이 품은 모든 이별의 물리적 증거다. 이어지지 못한 길은 미완의 슬픔을 드러내고, 그 끊어진 단면은 마치 찰나의 우연으로 시작되었으나 끝내 결실을 보지 못한 시인 페트라르카의 사랑을 닮았다.

AI작품


1327년의 어느 봄날, 아비뇽의 한 성당에서 페트라르카는 라우라를 마주쳤다. 그 짧은 시선은 시인의 심장에 박혀 평생을 뒤흔드는 운명이 되었다. 안타까운 것은 운명 같은 이 사랑이 끊어진 다리처럼 서로에게 닿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라우라가 유부녀였기 때문이다. 중세의 엄격한 윤리는 유부녀에게 사랑을 고백하거나 관계를 맺지 못하게 했다. 그런데도 페트라르카는 높고 차가운 교황청의 복도를 거닐며 강 너머의 라우라를 향해 300편의 소네트를 썼다.


라우라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호감을 가졌지만 당시의 사회적 관습 때문에 외면했는지도 모른다. 라우라에 대한 페트라르카의 일방적 사랑은 흑사병으로 그녀가 죽었을 때 ​"당신은 나의 태양이었고, 당신이 지고 난 뒤에도 나는 여전히 그 잔광 속에서 시를 씁니다."라는 소네트를 헌정하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수직의 성채 안에서 수평의 단절을 응시하며 쓴 시들은, 인문주의라는 거대한 꽃으로 피어났다는 사실이다. 소네트 시인으로서 페트라르카는 셰익스피어, 워즈워스 등과 어깨를 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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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우리가 처음 마주했던 그 순간이 페트라르카의 그것처럼 강렬했을까? 돌이켜보면 우리의 삶도 늘 매끄러운 다리는 아니었다. 때로는 미스트랄 같은 거센 바람에 흔들렸고, 때로는 예기치 못한 삶의 파도에 마음의 다리가 툭 하고 끊겨버린 듯한 막막한 순간도 있었다.

황금 십자가와 두 천사. 배경의 판넬은 아비뇽 시대의 교황 초상화

성 베네제 다리는 거센 물살에 밀려 강 한복판에서 멈춰 섰지만, 우리는 그런 시간 속에서도 서로의 결핍을 이해라는 재료로 메우며 조금씩 다음 칸을 놓아갔다. 수직으로 높게만 쌓으려 했던 나의 오만을 아내는 부드러운 수평의 마음으로 다독여주었고, 그렇게 40년이라는 시간은 '우연'을 '운명'이라는 단단한 성채로 바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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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찌를 듯한 교황청의 성벽이 아무리 견고한들, 그 안을 채운 것이 고독뿐이라면 그것은 그저 차가운 석조물에 불과할 것이다. 페트라르카는 평생 닿지 못한 라우라를 그리며 성벽 안에서 시를 썼지만 나는 내 곁을 지켜준 아내와 함께 이 성벽을 바라보고 있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중요한 것은 성벽을 얼마나 높이 쌓느냐가 아니라, 끊어진 다리 위에서도 끝내 손을 놓지 않는 동행이라는 것을 되새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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