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여행 그리고 기억
아를(Arles)의 기차역에 내렸을 때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찬란한 명성 뒤에 가려진 짙은 회색빛 침묵이었다. 로마 시대의 영광을 증명하는 원형경기장과 고대 극장은 거대한 공룡의 유골처럼 도시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세월의 풍파에 깎여 나간 돌덩이들은 쇠락한 제국의 뒷모습을 처연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골목마다 고흐의 복제화가 이정표처럼 걸려 있고, 그의 이름을 빌린 마케팅이 도시의 숨통을 겨우 틔우고 있는 듯한 풍경은 여행자의 마음 한구석을 안쓰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고흐라는 거대한 그림자를 걷어내고 이 도시의 맨살을 찬찬히 들여다보자 그곳엔 박제된 유적보다 더 뜨겁게 박동하는 '사랑'의 지층이 겹겹이 쌓여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 웅장한 원형경기장 앞에 서자, 2천 년의 시간을 뚫고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가 발끝에서부터 전해졌다. 거친 돌벽 사이로 부는 바람 소리는 어느덧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의 서곡이 되어 귓가를 울린다. 투우사의 당당한 행진곡과 카르멘의 치명적인 하바네라가 환청처럼 들려오는 듯했다. 이곳은 죽음과 삶이 교차하는 잔혹한 축제의 장인 동시에, 광기 어린 사랑이 폭발하던 무대이기도 했다. 카르멘이 외쳤던 "자유로운 사랑"의 절규가 이 거대한 돌기둥들 사이에 스며들어, 아를의 공기는 단순히 차가운 유적의 것이 아닌, 누군가의 심장이 타오르던 온기를 머금고 있었다.
아를의 사랑은 이처럼 강렬한 투우장의 열기뿐만 아니라, '미(美)에 대한 지독한 짝사랑'으로도 이어진다. 17세기, 아를의 고대 극장 흙먼지 속에서 팔이 잘린 채 발견된 '아를의 비너스'는 이 도시가 품은 첫 번째 연인이었다. 비록 차가운 대리석이었으나, 아를 사람들은 그 불완전한 여신상을 자신들의 살아있는 연인처럼 아꼈다. 루이 14세의 강압적인 명령으로 비너스가 베르사유 궁전으로 떠나던 날, 아를의 사내들이 느꼈던 상실감은 아마도 생살이 찢겨 나가는 고통이었으리라. 지금도 루브르 박물관 한구석에 서 있는 그녀를 보며 아를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웠던 연인을 추억하듯 고개를 떨군다고 한다.
이 애틋한 정서는 알퐁스 도데의 문학 속에서 '아를의 여인(L'Arlesienne)'이라는 전설로 부활한다. 소설과 비제의 음악 속에서, 한 청년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그 치명적인 여인은 정작 무대 위에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보이지 않기에 더 간절하고, 가질 수 없기에 더 영원한 사랑. 아를은 바로 그 '부재(不在)의 사랑'이 흐르는 공간이다.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을 걷다 보면, 금방이라도 모퉁이 너머로 화려한 비단옷을 입은 여인이 사라질 것만 같은 환영에 사로잡히는 것은 이 도시가 여전히 그 보이지 않는 연인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행자의 눈에 비친 아를의 쇠락은 어쩌면 지독한 사랑의 후유증일지도 모른다. 너무 뜨겁게 사랑했기에 타버린 흔적들, 영광을 누렸기에 견뎌야 하는 고독들. 고흐가 이곳에서 자신의 귀를 자르면서까지 붙잡으려 했던 그 강렬한 태양의 빛깔은, 사실 이 도시가 수천 년간 간직해 온 사랑의 온도였을 것이다. 그는 미치도록 뜨거웠던 아를의 심장을 캔버스에 옮기려다 스스로 타버린 마지막 연인이 아니었을까.
아를을 떠나며, 더는 이 도시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지 않기로 했다. 무너진 원형경기장의 돌계단은 누군가에게는 찬란한 데이트 장소였을 것이고, 빛바랜 셔터가 내려진 상점 앞은 누군가의 이별이 머물던 자리였을 것이다. 아를은 낡은 것이 아니라 깊어지는 중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와인의 향이 짙어지듯, 아를의 쇠락한 골목길마다 스며든 사랑의 이야기는 시간이 갈수록 더 애틋한 향기를 풍긴다.
비록 고흐의 이름에 기대어 숨 쉬고 있을지라도, 그 기저에 흐르는 사랑의 서사는 아를을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폐허로 완성시킨다. 사랑은 가고 유적은 허물어져도, 그 자리에 남은 온기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곳, 아를은 이제 '고흐의 도시'가 아니라, '사랑이 머물다 간 영원한 집'으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