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뜨 다 쥐르 연가

사랑, 여행 그리고 기억

by 아마도난

니스에서 제노바에 이르는 해안선은 신이 바다를 빚다가 가장 아끼는 푸른 물감을 쏟아버린 곳 같았다. 그 눈부신 '코발트블루'의 수평선을 따라가다 보면, 파도가 깎아내린 절벽 틈마다 오래된 이야기들이 이끼처럼 돋아나 있다. 사람들은 이곳을 지상 낙원이라 부르지만, 그 아름다움의 이면에는 한 번도 온전히 닿지 못했던 마음들, 즉 슬프고도 찬란한 전설의 파편들이 보석처럼 박혀 있다.



에즈(Èze)의 좁고 가파른 돌길을 오르다 보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그 옛날 무어인들이 보물을 숨겨두었다는데 보물은 어쩌면 금은보화가 아니라, 영원히 소유할 수 없는 사랑 그 자체였을지도 모른다. 이 지역에 전해오는 황금 염소는 그 보물을 지키기 위해 길 잃은 영혼들을 유혹하며 미로 속을 헤매게 만든다. 탐욕스러운 자들에게는 끝없는 낭떠러지를 보여주지만, 진실로 사랑하는 연인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다의 절경을 허락한다는 그 염소의 눈망울은 얼마나 고독했을까. 지켜야 할 보물이 무거울수록 염소의 금빛 털은 노을 아래 더욱 서글프게 빛났을 것이다. 사랑은 때로 손에 넣는 순간 사라지는 환영 같아서 연인들은 에즈의 절벽 끝에서 보물 대신 그저 서로의 손을 더 꼭 쥐며 믿음을 불어넣으려 하지 않을까?



해안선을 따라 동쪽으로 더 달리면, 신분을 초월한 도피의 상징인 알라시오(Alassio)에 닿는다. 공주 아델라시아와 기사 알레라모의 사랑은 화려한 궁전의 비단 대신 거친 해안가의 숯 가루를 선택했다. 황제의 딸이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매캐한 연기 속에서 숯을 굽던 그 세월은 비극이었을까, 축복이었을까. 비록 나중에는 용서를 받아 그들의 이름이 도시의 뿌리가 되었지만, 그들이 숨어 지내던 초창기의 밤들은 파도 소리조차 자객의 발소리처럼 들렸을 불안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알라시오의 담벼락에 새겨진 수많은 이름은 어쩌면 "우리도 이들처럼, 세상이 반대하더라도 끝내 곁에 있겠다"는 눈물겨운 맹세의 기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장 깊은 슬픔은 제노바 너머 친퀘 테레의 거친 포구 속에 숨어 있다. 인간 어부를 사랑한 인어의 이야기는 언제나 물거품처럼 허망하게 끝이 난다. 육지의 다리를 가질 수 없었던 인어는 밤마다 차가운 바위에 앉아 닿을 수 없는 연인의 등불을 바라보며 울었다. 그녀가 흘린 눈물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지 않고 단단한 조약돌이 되어 해변을 채웠다. 폭풍우가 치는 밤, 절벽을 때리는 파도 소리는 사실 바다로 돌아오지 않는 연인을 향한 인어의 비명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그 해변을 걸으며 예쁜 조약돌을 줍지만, 그것이 누군가의 영원한 그리움이 굳어진 결정체라는 사실을 알면 바다가 더는 맑게만 보이지 않을 것이다.



니스의 햇살과 제노바의 바람 사이에서 이 이야기들은 하나의 긴 실타래가 되어 우리를 붙잡는다. 사랑은 에즈의 황금 염소처럼 붙잡기 힘들고, 알라시오의 연인들처럼 고단한 현실을 견뎌야 하며, 베르나차의 인어처럼 끝내 눈물로 남기도 하니까.


꼬뜨 다 쥐르의 해안 도로는 단순히 두 도시를 잇는 길이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가 흘린 눈물의 궤적이며, 지키지 못한 약속들이 파도에 씻겨 내려가다 멈춘 흔적이다. 쪽빛 바다가 유독 깊어 보이는 이유는 그 속에 수천 년간 쌓인 전설의 무게가 가라앉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도 꼬뜨 다 쥐르의 태양은 뜨겁게 내리쬐지만, 그 화려한 윤슬 아래로 흐르는 서늘한 전설의 기운을 느낀다. 아름다움은 슬픔을 먹고 자란다는 것을 이 해안선을 따라 흐르는 오래된 연가들이 증명하고 있다. 우리는 그 길 위에서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이름들을 가만히 불러본다. 바다는 대답 대신 잔잔한 파도로 발등을 적실뿐이지만, 그 온기 없는 물결 속에서 우리는 세상 모든 사랑이 남긴 가장 보편적인 슬픔을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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