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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술인이고....

by 아마도난

전주 한옥마을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차(茶)를 마시기 위해 행원을 찾았다. 풍남문에서 100여 미터도 되지 않는 가까운 곳이었지만 골목 안쪽으로 소박하게 자리 잡고 있어 이곳 지리에 익숙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었다. 예전에는 부속건물도 더 있었다는데 본채만 남겨두고 다 정리했다고 한다.





1928년에 설립된'낙원 권번'을 마지막 기생이라 불리는 남전(藍田) 허산옥(1926~1993)이 1942년에 인수하여 행원(杏園)이라는 이름의 요정을 열었다. 전주 풍남문 근처에 있는 곳으로 서울의 '삼청각'처럼 지방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 유지들의 연회 장소로 활용되는 등 한때 밀실정치의 상징으로 부각되기도 했다.

전주의 대표적 요정으로 자리 잡은 행원에는 예술가들도 북적였다. 남전이 한국전쟁의 혼란 속에 생계 자체가 어려워지거나 피난 온 당대의 예술인들을 후원하고 창작활동을 북돋았기 때문이다.





1983년, 판소리 명인이며 전라북도 무형문화재인 성준숙 명창이 행원을 인수하여 2000년대 중반부터는 한정식 집으로 운영되기도 했으나 지금은 카페로 변신하였다. 매주 토요일에는 차를 마시며 성준숙 명창의 제자들이 펼치는 공연을 즐길 수 있다.

건물 앞마당에 정원을 둔 우리나라 전통가옥과는 달리 행원은 'ㄷ'자 건물 안쪽에 작은 연못과 정원을 갖춘 일본식 가옥으로 지어져 이목을 끌었다고 한다. (지금은 'ㅁ'자 모양의 건물이다.)




입구에서 안쪽을 보며 기웃거리자 어떤 남자가 다가와 안으로 들어오라고 권했다. 쥔장이었다. 그는 음료를 주문하고 왼쪽 방으로 들어가 있으면 가져다준다고 했다. 실내가 예뻐서 음료가 나올 때까지 둘러봐도 되느냐고 물으니 편하게 돌아보란다. 풍패권번(豊沛券番)이라는 현판이 있는 방으로 갔다. 권번이란 일제강점기 때 성행하던 기생 조합(妓生組合)의 일본식 명칭이다.



풍패권번(豊沛券番). 건물 이름이 참으로 도도하다. 풍패란 한나라를 세운 유방(劉邦)의 고향인 패주(沛州)의 풍읍(豊邑)을 줄인 말로 제왕의 고향을 가리키는 별칭으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남전 허산옥 선생의 자부심이 물씬 묻어나는 이름이 아닐 수 없다.

서까래에는 한문으로 된 상량문이 남아 있다.


'단기 4279년(서기 1946년) 3월 3일 진시에
기둥을 세우고 같은 날 오시에 들보를 올리다. 하늘의 세 가지 빛에 응하여 인간 세계엔 오복을 갖춘다.'



건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지는 못했지만
낙원 권번을 인수한 뒤 신축한 건물인 것 같다.
이 건물로 인해 원래 'ㄷ'자였던 건물이
오늘날과 같은 '미'자가 된 모양이다.





손님이 없는 틈을 타서 북과 장구를 만져봤다. 뒤에 있는 가야금은 명품이라고 해서 눈으로만 만졌다.

매주 토요일 오후 성준숙 명인의 제자들이 공연을 하고 손님들은 차를 마시며 흥겨운 교류를 갖는 장소다.



북 치고 장구 치며 잘 놀고 있는데 음료가 준비됐다고 쥔장이 불렀다. 쥔장은 성준숙 명인의 장남이다. 짧은 복도를 지나 차실로 갔다. 차실(茶室)의 분위기가 고급스럽다.



진한 쌍화탕을 마시며 분위기를 즐기고 있을 때
차실 구석에 나이 든 여자분이 혼자 나직하게 창(唱)을 하기도 하고 누군가와 통화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성준숙 명인이었다.

성준숙 명인의 음반. 민소완이라는 예명으로도 활동했다.



그녀에게 인사를 하자

"나는 예술인이고 이 집은 문화재여"


하며 인사를 받았다.

그녀의 안내를 받아 92년이 되었다는, 이곳에서 처음 지어진 '낙원 권번' 건물을 구경했다. 세월의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을 줄 알았는데 예쁘게 인테리어 된 요즘 가게를 보는 것 같았다. 기본 골격은 유지한 채 내부 인테리어를 다시 해서 그렇단다.



그녀는 "지금은 창고로 쓰고 있는디…"하며 옆방으로 안내했다. 방에 들어서더니 천장에 나있는 작고 네모난 문을 열어 서까래를 보여줬다.
서까래에는 소화 3년(1928년) 2월 24일에
상량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었다.

눈으로 보이는 것은 요즘 지은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오래된 것이라는 무언의 설명이다. 이 집의 주인이라는 자부심도 담긴 듯했다. 그 방에는 그녀에 대해 알 수 있는 몇 가지 자료도 보관되어 있었다.

'92년 된 낙원 권번'의 출입문을 열면 여인의 나체화가 먼저 나타난다. 권번이었음을 알리려는 장치일까? 아름다운 방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일까?



낙원 권번을 둘러보고 나자 성준숙 명인은
많은 얘기를 더 들려주고 싶다며 다시 한번 들르라고 했다. 그녀의 말이 아니어도 토요일에 다시 방문하여 국악과 향긋한 차를 함께 즐겨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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