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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도난 Sep 12. 2019

슬픔을 간직한 도시, 에든버러

영국 여행

에든버러 성은 높이 133m의 화산 꼭대기에  지어진 성으로 3면이 가파른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동쪽 언덕을 통해 입구로 접근할 수 있는데 이곳마저도 해자가 있어 외부의 적이 침입하기 어려운 철옹성이다.


에든버러에 가면 꼭 들르게 되는 로열 마일,  『로빈슨 크루소』로 유명한 영국 소설가 대니얼 디포가  『대영제국 여행기』에서 “영국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넓고 길고 멋진 거리”라고 감탄한 로열 마일이 이곳에서부터 시작된다.

에든버러 성 정문. 입장권을 사는데만 1시간이 걸렸다.


에든버러 성과 동쪽 지대의 홀리루드 하우스 궁전(Holyrood House Palace)을 잇는 약 1.6km의 하이 스트릿(High Street)을 로열 마일(Royal Mile)이라 부른다. 왕족과 귀족들만이 통행할 수 있었고 거리가 대략 1마일인 까닭이다.  시민들은 클로스(close)라 불리는 좁은 골목길로 다녀야 했다.


아래 사진에서 마치 생선 등뼈처럼 보이는 부분이 구시가지로 좌우로 곧게 뻗은 큰길이 로열 마일, 생선의 작은 가시처럼 위아래로 나타난 부분이 클로스다.

사진 위쪽은 격자형 도로구조를 갖춘 신시가지, 사진 중간의 생선뼈 모양이 구시가지로 생선의 등뼈처럼 보이는 부분이 로얄마일, 잔 가시처럼 보이는 부분이 클로스




로열 마일 도로를 따라 에든버러에서 가장 높은 첨탑을 가진 톨부스 교회(Tolbooth Kirk), 14~15세기에 완성된 세인트 자일스 성당(St. Ciles Cathedral),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로 유명한 과거 스코틀랜드 국회의사당, 감옥으로 사용되다 사회사 박물관으로 탈바꿈한 캐넌게이트 톨부스(Canongate Tolbooth), 17세기에 세워진 서민들의 공동주택 글래드스톤스 랜드(Galdstone’s Land) 등이 있다. 이런 역사적 건물 외에도 톨부스 교회 옆에는 유명한 스카치위스키 박물관이 있고 어린이박물관,  Peopls Story 등 에든버러의 역사를 짐작하게 할 수 있는 볼거리들 있다.

로열마일
세인트 자일스 성당과 아담 스미스 동상


흥미로운 것은 과거 에든버러 시민들의 생활사를 보여주는 The Peoples Story이다. 18∼20 세기의 선술집, 가정집, 감옥, 의상실 등을 실제 사용한 가구와 장식품 등을 이용하여 재현해  놓았다. 이곳을 둘러보는 동안 퀴퀴한 냄새 때문에 두통까지 느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냄새까지 재현했다고 한다. 왕족과 귀족 그리고 부유층들이 사치와 향락을 만끽하고 있을 때 대부분의 시민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삶을 겨우 영위하고 있었던 것이다.

2층에 사는 어느 부인이 창밖으로 뭔가를 버리는 모습이 보이는데 이 당시에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고 한다.
『The Peoples Story』 에서


에든버러에는 유난히도 유령에 얽힌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것도 귀엽거나 친근한 그런 유령이 아니고 우리나라의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귀신들처럼 한 많고 포악한 유령들의 이야기다. 그 가운데 하나가 “갈렐루”다.

로열 마일에서 ‘카우 게이트’로 빠지는 좁은 골목에는 해산물을 판매하던 피시 마켓이 있다. 약 1300~1800년이 된 피시 마켓은 서민들의 밀집 거주 지역으로, 사람들이 모여 잡담을 하기 좋은 장소였다고 한다. 당시 피시 마켓은 하수 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화장실이 없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배변을 처리할 방법이 없어 결국 창문 밖으로 자신의 배변을 던졌다. 그것을 본 사람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을 조심하라는 뜻의 “갈렐루”라는 말을 외치면 길에서 잡담하던 사람들은 일제히 골목 사이로 숨었다고 한다.


화려한 거리의 이면에서 척박하게 살아가는 는 시민들의 삶의 현장 골목길인 Close이다.

Close는 끝이 뚫려 있는 곳도 있고 막혀 있는 곳도 있었다. 끝이 뚫려 있는 골목길은 때로 운치를 느끼게 하기도 하지만 음침한 분위기로 인해 발을 들이기가 조심스러웠다. 이런 주저함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는지 호기심 때문에 발을 디딘 서양인 관광객들 가운데 나와 걸음 보조를 맞추려는 사람도 있었다. 오늘날도 그런데 예전에는 그 분위기가 어땠을까?



입구에 Close라고 쓰여 있지만 안쪽이 밝아 보이는 곳이 있어 들어가 보니 끝이 막혀 있었다. 막다른 골목이라고 표현하는 그런 유형의 Close로 마당을 공유하는 일종의 공동주택 같은 곳이었다. 이런 클로스는 꽤나 깜찍(?) 해 보였다.

끝이 막혀있는 Close


로열 마일의 끝부분에 이르렀을 때 스코틀랜드 국회 건물이 보였다. 내부 관람이 허용된다는데 그 앞에 있는 홀리루드 궁전을 먼저 보고 싶어 미뤘다가 끝내 보지 못했다.

홀리루드 궁전 전면
홀리루드 궁전 내부정원
홀리루드 궁에 붙어있는 수도원 잔해



홀리루드 수도원의 Guesthouse였다는 홀리루드 궁. 1536년부터 시작된 헨리 8세의 종교개혁에 따른 수도원 파괴 이후 Guesthouse는 궁으로 바뀌고 수도원은 폐허가 된 채로 남겨져 있다. 주인 역할을 하던 수도원의 흉물스러운 잔재를 아직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영국인들은, 스코틀랜드 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엘리자베스 여왕이 여름 궁전으로 쓰고 있는 홀리루드 궁. 여왕이 여름휴가를 떠나면 관광객들은 런던의 버킹검 궁에 발을 들일 수 있다. 그때는 거꾸로 홀리루드 궁에 관광객이 들어갈 수 없다는 얘기겠지? 그 옛날 여왕이 이곳에서 여름휴가를 보낼 때 서민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1985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에든버러. 신가지에도 구시가지에도 거장들의 손길이 닿은 화려하고 고색창연한 건물이 시선을 빼앗는 곳. 그 화려한 도시의 뒤편에 감추어진 슬픈 노래가 들려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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