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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도난 Nov 10. 2019

자의 반 타의 반

뒤웅박 팔자

뒤웅박이란 박을 쪼개지 않은 채로 꼭지 근처에 구멍만 뚫거나 꼭지 부분을 베어 내고 속을 파낸 바가지를 말한다. 이 뒤웅박에 부잣집에서는 쌀을 담고 가난한 집에서는 여물을 담았다고 한다. 이처럼 박이 어느 집으로 팔려가느냐에 따라 용도가 결정된다고 해서 생겨난 말이 뒤웅박 팔자다.


프랑스 기업과 우리나라 기업이 합작해서 설립한 회사에 근무할 때였다. 2008년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왔을 때 합작파트너였던 프랑스 기업 본사에서 위기극복 방안과 함께 3위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시장점유율 개선 방안을 제시하라는 지시가 왔다.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하다 역시 시장점유율 3위권이던 회사와 합병을 추진했다. 그 회사 역시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렇게 해서 탄생한 신설회사는 기대했던 것 이상의 경쟁력을 보였다. 시장점유율은 선두 다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높아졌고, 회사의 수익성도 급격히 개선됐다. 


호사다마라고 해야 할까? 신설회사와 달리 나의 모기업 경영상황은 최악으로 치달리고 있었다.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회사는 신설회사의 지분을 다른 합작 파트너에게 팔았다. 비빌 언덕이 사라지자 내 처지는 졸지에 비루먹은 강아지 신세가 됐다. 새로 참여한 국내 파트너 측에서 내게 회사를 떠나도록 무언의 압력을 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프랑스인 사장이 조용히 불렀다.


"내 임기가 끝나면 다음 사장은 저쪽 회사에서 지명할 거야. 그렇게 되면 네 입장이 더욱 어려워질 테니 내가 사장으로 있는 동안 퇴사해라. 내게 주어진 권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보상하겠다."


사장은 퇴직위로금과 함께 6개월간의 전직지원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쫓기듯  회사를 야 하는 사람들과 비교하면 상당한 보상을 받은 것인데한동안 마음속 분노로 가득다.


한편으로는 새 일자리를 구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 거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무능해서 쫓겨난 게 아니고 운이 나빠 회사를 떠다고 생각때문이다.


애당초 합작회사로 자리를 옮기지 않았더라면 다른 결과가 나타났을까? 뒤웅박은 스스로 운명을 선택할 수 없으니 내 팔자가 뒤웅박 팔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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