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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도난 Nov 05. 2019

국영수에서 음미체로

인생 2막

"야, 야! 내 말 좀 들어봐. 우리들은 그동안 국영수로 살았잖아. 그렇지만 이제부터는 태도를 꿔서 음미체로 살아야 해!"


20여 년 전부터 매월 첫 번째 수요일에 만나 점심을 같이 하는 모임에서 난데없이 '국영수'론을 들고 나온 친구가 있었다. 임금피크 기간도 끝나 퇴직을 앞둔 친구가 새로운 일자리를 찾겠다고 하자 정색을 하고 말을 꺼낸 것이다.


처음 모임이 시작됐을 때만 해도 소속회사의 대리, 과장이던 친구들이 이제는 회사를 떠날 나이가 됐다. 베이 붐 세대의 중심에 놓인 탓에 이미 회사를 떠나 자그마하게나마 자기 사업을 시작한 친구도 있고, 집에서 소일하며 보내는 친구도 있었다. 임피(임금피크의 준말)라며 불만 아닌 불만을 토로하는 친구는 공공의 적이었다.

우리는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똑같은 음식점에서,  그 집의 변하지 않은 방에서 만나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어쩌면 그 방에는 우리의 땀냄새나 한숨 그리고 열정이 구석구석 배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 방에서 난데없이 '국영수로 살았잖아!'라는 말이 튀어나온 것이다.


"지금까지는 국영수로 살았지만 앞으로는 음미체로 살아야 해!"


국영수는 뭐고 음미체로 살라는 말은 또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란  말인가?


그의 주장에 따르면 명예를 위해서, 성취감을 위해서 그리고 처자식들과 먹고살려고 원치 않았어도 열심히 매달리며 살아온 것이 국영수의 삶이라는 것이다. 좋은 대학에 가려고 좋아하지도 않는 국어, 영어, 수학을 열심히 공부한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정작 재미있는 과목은 음악, 미술, 체육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는 하고 싶은 것, 재미있는 것을 하며 사는 게 음미체의 삶이라며 그게 인생 2막을 더욱 풍부하고 값지게 할 거라며 소나기처럼 입에서 침을 뿜어내며 주장했다.


뜻밖의 주제가 등장하면서 그날 점심에 반주로 마신 막걸리 양이 평소의 2배가 넘었다.

음미체의 삶을 주장하는 친구는 얼마 전부터 서예를 시작했다. 지금부터 열심히 연습해서 7 순 때 개인전을 여는 게 꿈이라고 했다. 그가 서예를 시작한 것은 뜻밖에도 내가 수필을 쓰고 소설을 발간한  것에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내가 회사에 다시 나가려고 하 강력하게 만류했다.


"나 같으면 회사에 안 나가. 음미체로 넘어가야 하는데 국영수 생활을 왜 연장하려고 하는데? 지금까지 소설 2편 썼잖아. 수필도 오랫동안 썼잖아. 그렇게 음미체 생활을 하다 왜 국영수 생활을 연장하냐고."


열변을 토하는 친구의 말이 알듯 모를 듯 뇌리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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