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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도난 Oct 31. 2019

새로 출근하는 분이시죠?

순간의 선택

몇 년 동안을 백수로 지내다 회사에 출근하는 날. 새삼스럽게 긴장이 됐다. 그래서 그랬을까? 첫 출근한 아침에 예상치 않은 상황과 맞닥뜨렸다.


조금은 어색한 모습으로 회사 로비에 도착하 편안한 느낌의 나이 지긋한 경비가 다가오며 "오늘부터 새로 출근하시는 분이시죠?" 하며 깍하게 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


나보다 꽤 연배가 높아 보이는 사람으로부터 인사를 받다 보니 나도 모르게 "아, 네 네!"하고 엉겁결에 머리를 깊이 숙이며 같이 인사를 다.


인사가 끝나자 그는 황급히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 뒤 공손한 모습으로 옆에 다. 여전히 익숙지 않은 상황에 적잖이 불편했다.


예전에 땠었을까? 잠시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어쩌면 어깨에 힘 잔뜩 주고 살았는데 백수로 몇 년을 살면서 기억 속에서 모두 지워는지도 모른다. 하여튼 비의 공손한 모습을 대하니 당연함보다 어색함이 먼저 다가왔다.

수필을 쓰며 가깝게 지낸 문우가 있다. 글도 잘 쓰지만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회장으로부터 신임을 듬뿍 받으며 회사에 다니고 있어 매양 부럽게 만드는 사람이다. 그 오래전부터 농담 반 진담 반으로(사실은 진담에 훨씬 가깝게) 허드렛일이라도 좋으니 회사에 자리 하나 만들어 달라는 소리를 하곤 했다.


때마다 그는 당치 않은 농담하지 말라며 손사래를 지만 그 모습마저 재미있어 틈만 나면 그녀에게 압박을 가하곤 했다.


어느 날 그녀가 두 개의 일자리를 제시하며 선택하라고 했다. 하나는 빌딩을 관리하는 경비였고 또 하나는 회사를 관리하는 자리였다.


사실 스트레스받기도 싫고 머리 쓰는 일은 더더욱 힘에 겨워 빌딩 경비에 관심을 두었는데 그녀는 '답정너'라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궁리 끝에 그녀에게 문자메시지로 답을 보냈다.


"(전략)... 남들보다 조금 일찍 퇴직하고 나름대로 유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소위 말하는 인생 2막을 시작한 셈이지요. 다만 회사 생활을 하면서 축적한 노하우를 누군가에게 전해주지 못하는 게 아쉬울 뿐입니다. 그렇다고 조직에 얽매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제 다시 인생 1막으로 돌아오면 어떻겠냐는 제의를 받고 보니 생각이 많아지네요. 다시 1막으로 돌아간다면 기대할 수 있는 보람이나 성취감이 뭘까 하는 생각을 해보고 있습니다....(후략)"

오랜 공백을 깨고 회사에 출근하려니 모든 게 어색했다. 와이셔츠 위에 맨 넥타이도 답답했고, 운동화 대신 신은 정장 구두도 불편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경비의 깍듯한 인사 편치 않았다.  아직은 백수 물이 빠지지 않아서 그런가?


그는 출근 시간에 마주치면 어김없이 정중하게 인사를 했 그때마다 나도 그에게 공손한 인사로 답했다.


그의 인사를 받을 때마다 생각한다. '만약 내가 경비직을 택했더라면 지금처럼 인사를 받는 대신 누군가에게 공손히 인사하고 지 않을까?'라고.


사람 팔자라는 게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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