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마도난 Nov 17. 2019

평생교육원으로

취업을 포기하다

내가 유능고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생각 착각이었다는 것은 회사를 떠나는 순간야 깨달았다. 게 일자리를 줄 수 있는 사람 가운데 나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직장을 찾기 위해서는 내 충분한 상품성이 있 것을 입증해야 했다. 상품성이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것 아니었다. 품질보증서 필요했다. 직높을수록 품질보증서는 더욱 중요했 그것도 그 회사가 원하는 보증서라야 했다. 


비로소 전직지원회사의 컨설턴트가 한 말이 뼈저리게 다가왔다.


"재취업에 성공한 사람들의 70% 이상은 주변 사람의 추천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이력서를 통해 구직에 성공할 률은 5% 정도로 보시면 됩니다. 그러니 여러 사람을 만나 재취업 의사가 있음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격적으로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기 때문에 컨설턴트의 조언은 내게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사람들을 만나고 도움을 청할수록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 가운데 접에서 두 번의 좌절을 겪게 되자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돈벌이 포기하고 즐겁고 유익하게 살아갈 방법을 찾기로 한 것이다.




회사생활을 시작하면서 죽기 전 내 이름이 들어간 책 2권을 출판하고 싶다는 꿈을 어왔다. 항상 머릿속에 남아 있는 꿈 때문에 틈이 상상의 날개를 펼쳐보기도 하고 줄거리를 끄적거려 보기도 했다.   꿈이 오른 것이다.

'그래 이 길로 가는 거야!'




문제는 글 쓰는 재주였다. 회사원으로 살면서 수많은 보고서는 써봤지만 서술형 글을 써본 적이 없었다. 짧은 글조차도 제대로 쓰질 못해 핀잔을 먹은 적도 있었다. 책을 쓰는 것은 고사하고 초보적인 글도 서투르니 무엇보다도 글쓰는 훈련부터 해야 했다.


막상 글 공부를 하겠다고 결심은 했지만 어디에 가면 배울 수 있을지 막연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대학의 국문학과나 문예창작과에 학사 편입하는 것이었다. 대학교수로 재직 중인 친구도 괜찮은 생각이라며 맞장구를 쳐주어 편입 가능한 대학을 찾아보기로 다. 여러 대학을 두고 장단점을 저울질하고 있을 때 한 친구가 조언했다. 


"학부에 편입하거나 신입생으로 입학을 해서 글쓰기 훈련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아. 글쓰기와 관계없는 교양과목도 들어야 하고 여러 가지 과제도 해야 하는데 괜찮을까? 라리 국문과 대학원 석사과정에 도전해보는 게 어? 그러면 교양과목을 들어야 하는 부담이나 전공과 무관한 과제 부담 없이 글쓰기에만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럴듯했다.  다른 친구는 석사과정에 들어가면 글쓰기보다 연구과정이 더 많을 거라며 반대의견을 냈다. 그 말도 그럴듯했다. 그때 알았다. 내 귀가 얼마나 가벼운 팔랑귀였는지를....


대학 편입이냐 대학원 진학이냐를 놓고 고민하다 문득 내가 원하는 것이 글쓰기 훈련인데 본질을 놓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이나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고 글쓰기만 할 수 있는 곳을 찾 보니 무척 많았다. 강사들의 경력도 다양하고 훌륭해 보였다. 배울 수 있는 곳이 이토록 많다니.... 행복했다. 심사숙고한 끝에 대부분의 대학에 개설되어 있는 평생교육원에 등록하기로 했다.




어느 대학 평생교육원에 등록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기준은 딱 한 가지, 교통이었다. 강사의 경력이나 명성보다는 가까운 곳에 있는 평생교육원으로 결정하기로 한 것이다.


당시 나는 3명의 친구들과 공동으로 종로에 있는 오피스텔을 임차해서 사무실로 쓰고 있었다. 특별한 목적은 없이 어울려서 뭔가를 모색하기 위함이었다. 이 무렵에는 퇴직하고 나온 사람들 가운데 오피스텔 등을 임차해서 사무실을 운영하는 경우가 꽤 많았다. 사업을 시작하거나 새로운 사업을 모색하느라 그런 사람도 많았지만 매일 출근하던 습관 때문에 집을 떠나갈만한 곳이 필요해서 그런 사람들도 있었다.


사무실 이름도 짓고 로고도 만들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기억에 남아있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여자대학교의 평생교육원이 있었고, 강좌 중에 수필 창작반이 있었다. 원래는 문예창작이나 그 비슷한 이름의 강좌를 듣고 싶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찾지 못했다. 평생교육원까지는 걸어서 5분 거리여서 오가는 시간도 많이 필요치 않았다. 여러 가지 상황을 감안하여 최적의 장소라 판단하고 그곳에 등록하기로 마음먹고 아내에게 내 생각을 말했다.


사실 아내의 동의를 받거나 의견을 들으려는 게 아니었다. 그저 글쓰기 공부를 시작하려 하고, 교육장소가 어디다 하는 사실을 통보하려는 것이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내가 뾰로통해하며 반문했다.


"하고 많은 대학 다 놔두고 왜 하필 여대예요?"

"여대가 뭐 어때서? 사무실에서 가까우니까 그리 결정한 거지."

"거기 아니어도 갈 만한 곳은 많이 있잖아요?"


뜻밖의 거센 반발에 당황했다. 여대에서 운영하는 평생교육원이라고 해서 여자들만 가득한 것도 아닐 테고, 설사 여자들이 많다 해도 퇴직해서 별 볼 일 없는 남자에게 무슨 관심이 있겠는가? 아내의 반발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설마 하니 질투심이 작동한 것은 아닐 테고....


중요하지 않은 문제 때문에 다투고 싶지 않아 평생교육원을 다른 곳으로 바꾸기로 했다. 사무실 대신 집에서 가까운 대학을 선택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고려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에 첫 발을 들이게 되었다.

행운도 따다. 최고의 스승, 오경자 교수를 만난 것이다.  그녀는 한국수필 문학의 거목이었다. 명성이나 경력을 염두에 두지 않았는데 뜻밖에 멋진 수필가를 만난 것이다.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이나 수필문학가협회 회장이라는 직함은 오히려 부수적이었다. 그녀의 가장 큰 매력은 학생들의 장점을 콕 집어 칭찬하는 데 있었다. 그녀의 격려를 받으며 글쓰기 공부를 시작했다.

작가의 이전글 생각 따로 현실 따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