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죄가 있다고

by 아마도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든 전라남도 보성의 ‘왕벚꽃 터널.’ 승용차 두 대가 겨우 지날 만큼 좁은 도로 양쪽에는 한줄기 햇빛도 놓치지 않으려고 벚나무가 하늘을 향해 키를 높이고 있었다. 한여름 녹음(綠陰)에도 이토록 아름다운데 벚꽃이 만개하는 봄에는 어떨까? 구절양장(九折羊腸)처럼 오른쪽으로 꺾이고 왼쪽으로 휘기를 반복하며 15 리 동안 이어지는 이 멋진 길을 어떤 이는 아이의 탯줄 같다고 했다. ‘탯줄?’ 이토록 아름다운 길을 그렇게 성글게 표현하는 사람의 심성이 참으로 고약하게 느껴졌다. 길에다 모든 것을 온전히 맡기며 운전하기를 10 여분. 대원사에 도착했다. 백제 무녕왕 3년(서기 503년)에 창건됐다는 유서 깊은 절이다. 비록 여순사건에 차이고 6.25 한국전쟁에 찢기어 쇠락했지만 한때는 호남의 내로라하는 절이었다.

일주문을 들어서니 오른쪽으로 작은 문이 또 하나 있다. ‘우리는 한 꽃’이라는 현판을 단 일화문(一花門)이다. 문의 이쪽과 저쪽에는 빨간 모자를 쓴 아기동자像이 앉아 있었다. 풍상에 시달리고 사람들이 날린 먼지를 뒤집어쓴 채 얼마 동안인지 모를 세월을 그렇게 버틴 모양이다. 극락전에 들었다. 그동안 하느님이나 예수님에게 고개 한번 숙이지 않았고 부처님에게 엎드려 절 한번 드린 적이 없었는데 이날만은 불전함에 시주하고 어머니와 아내의 건강을 기원했다. 법당을 지키고 있는 보살에게 ‘극락전 앞에 있는 동자상들은 뭔가요?’하고 물었더니 ‘세상의 햇빛을 보지 못하고 죽은 아이들인데 아이 잃은 엄마들이 시주해서 만들었습니다. 아이들 가슴에 달고 있는 이름표가 엄마 이름이에요. 저희 절에서는 모든 태아령(胎兒靈)들에게 천도재를 지내줍니다.’하고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그들을 위로해 주는 사람이 있고 기억하고 안타까워하는 부모도 있다니 참으로 다행이다.


이승과 저승의 사이에는 삼도(三途)의 강이 흐른다. 이 강가 모래밭에는 부모와 자식의 인연이 두텁지 못해 어려서 죽은 갓난아기와 햇빛을 보지 못하고 죽어 간 핏덩이들이 모래밭에서 고사리 손을 모아 탑을 쌓고 있다. 부처님 공덕을 빌어 강을 건너려고 고사리 손으로 돌 하나를 들고 어머니를 생각하며, 다시 돌 하나를 들어 아버지 이름을 부르며 탑을 쌓는다. 그러나 하나의 탑이 완성돼 갈 즈음이면 저승의 도깨비들이 나타나 호통을 치며 방망이로 탑을 부숴버린다. 애써 쌓아 올린 탑이 무너져 내리면 어린 영혼들은 그만 모래밭에 쓰러져 서럽게, 서럽게 울다가 지쳐 잠이 든다. 그때 지장보살님이 눈물을 흘리고 나타나 어린 영혼들을 감싸 안으면서 “오늘부터 나를 어머니라고 불러라”하면서 삼도의 강을 건네준다.
(대원사 안내문에서)


극락전 앞 양지바른 곳에는 오른손으로 황금색 석장을 짚고 왼손으로 아기동자를 안고 서 있는 태안 지장보살(胎安地藏菩薩) 상이 있다. 그 주위에는 미소를 머금은 아기동자像들이 빨간 모자를 쓰고 가지런하게 열을 지어 앉아 있다. 맨머리로 앉아 있는 아기들이 안쓰러워 어느 보살께서 손뜨개로 모자를 만들어 주었단다. 이 녀석들은 그리워하고, 가슴 아파하는 어미가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태아령들이 버림받고 잊힌 채로 구천을 맴돌고 있을까? 억겁의 인연으로 엄마의 뱃속에 자리를 잡았을 때 무척 기뻐했을 태아들은 자기 뜻과는 상관없이 세상 구경도 못하고 삶을 마감해야 했다. 그것도 서러운데 저승으로 갈 노자 돈 한 푼 없고, 노자 돈을 가름하려고 쌓은 돌탑은 도깨비들이 번번이 부수어버리니 그 분노가 얼마나 클까? 저승에 들지 못하고 악귀가 되어 떠도는 태아령들이 세상을 향해 퍼붓는 저주가 들리는 것 같다.

극락전 뒤로 돌무덤들이 보였다. 이런! 삼도천 앞에서 고사리 같은 손을 움직여 돌탑을 쌓던 녀석들을 대신해서 누군가가 대신 쌓아주고 그 위에 빨간 모자를 쓴 아기동자상을 올려놓았다. 녀석들도 만족스러운지 배시시 웃고 있다. 아이들의 극락왕생을 빌며 수관정(睡觀亭)으로 갔다. 작은 방에 관을 들여놓은 곳인데 죽음을 체험해보는 곳이란다. 내 손으로 태아를 죽인 적이 없고, 죽게 한 적도 없는 것 같은데 수관정에 든다는 생각만으로도 두려움이 앞서 그냥 돌아섰다. 세상에! 죽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두려운데 하물며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의 심정은 어떨까?


낙태 합법화 논쟁이 종결되었다. 여자의 자기 결정권을 주장하며 낙태 합법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낙태는 살인이니 낙태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이는 태아를 사람으로 볼 수 있느냐는 문제도 제기한다. 누가 옳든 태아에게는 부모를 잘못 만난 것 말고 무슨 죄가 있을까? 그래도 녀석들은 엄마가 그립겠지? 맞다! 왕벚꽃 터널은 인연이 끊긴 엄마에게 닿고 싶은 아이의 탯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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