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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도난 Nov 24. 2019

많이 써본 솜씬데요?

용기를 주는 한 마디

평생교육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에는 기대와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궁금했고 그들 틈바구니에서 형편없는 글을 선보이다 망신이라도 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컸다. 강사는 내 글솜씨를 가다듬어 줄 수 있는 사람일까 하는 궁금증도 있었다.



학교가 가까워지 새삼 긴장밀려오며 경제연구소에 근무할 때의 일이 떠올랐다. 경제연구소는 다양한 경제 이슈를 분석하고 그것을 보고서로 만들어 발표하는 곳이다. 이를 위해 대부분의 경제연구소들은 정기간행물도 발간했다. 이전까지 일련번호와 기호 등을 이용해서 간결하게 보고서 작성 경제연구소에서 서술형 문장을 요구했다. 압축된 문장 대신 완성형 문장으로 글을 쓰는데서 오는 부담은 생각보다 컸다. 보고서 내용은 호평을 받을 때가 많았지만 그 내용을 표현해내는 것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동반했 것이다.(금은 담배를 끊었지만 이때는 하루 흡연량이 3갑을 넘었다.)

보고서가 올라가면 실장은 문장을 바로잡느라고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주장이 논리적이고  객관적인지 여부는 그다음이었다.  보고서를 올린 어느 날, 늘 그랬던 것처럼 실장 호출했다. 그의 책상 위에 놓인 보고서에는 부분적으로 빨간 줄과 동그라미들이 쳐있었다. 빨간 플러스펜으로 보고서가 도배되는 만행(?)은 면했지만 빨간색이 주는 거부감까지 완화되지는 않았다. 그는 보고서 수정을 지시하는 대신 내게 문장론을 강의다. 주어, 동사, 목적어 뚜렷하읽는 사람이 필자의 주장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보고서가 올라올 때마다 글을 고치는 게 짜증스러워 나의 글쓰기 실력을 끌어올리기로 작정했던 모양이다. 그날 이후 내 보고서 제법 개선되기는 했다.



옛일을 생각하며 걷다 강의실 앞에 이르러 일단 심호흡부터 하고 문을 열었다. 교실에는 이가 지긋해 보이는 10여 명의 수강생들이 앉아 있었다.  3, 40대 사람들이 대부분일 거라는,  쩌면 내가 가장 나이가 많은 수강생 일지 모른다는 근거 없는 확신이 빗나가면서 잠시 당황했다. 혹시 잘 못 찾았나 하는 생각 강의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기까지 했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재능 있는 젊은이들 틈바구니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첫날, 오경자 교수는 수필을 '노년의 문학' 혹은 '고백의 문학'이라고 소개했다. 삶의 경륜이 쌓여야 비로소 완성되는 글이라는 것이다. 그녀의 설명을 듣고 나니 수강생들의 나이가 많은 이유가 이해될 듯싶기도 했다.



수업은 수강생들이 자기들이 준비해온 글을 발표하고 서로 토론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그 토론을 강사가 마무리 지어주고 다음 발표로 넘어갔다. 첫날 수업을 마치며 오 교수는 다음 시간부터는 글을 한편씩 써오라고 했다. 본인 생각에 엉터리라는 생각이 들더라도 일단 가져오라는 것이다. 그녀의 수업방식이었다.


두 번째 수업시간. 절반 정도의 사람들이 글을 가져왔다. 나도 끙끙거리며 써 온 글을 조심스럽게 제출했다. 수업이 시작되자 좀 더 글쓰기 공부를 하고 첫 작품을 제출할 걸 너무 서둘러 냈다는 후회를 하며 한 사람의 발표가 끝나면 내 글을 읽고 보고 그다음 사람의 발표가 끝나면 또 읽어봤다. 들의 뛰어난(?) 글을 접하고 나니 서툰 이 점점 부담스럽게만 느껴졌다.  마침내 순서가 되었다. 글을 읽으려는데 긴장한 탓인지 목소리가 갈라지고 입술이 바싹 말라버렸다. 물로 입술을 적시며 경황없이 읽고 나니 오 교수가 짐짓 놀라는 척하며 말했다.


"아휴! 글을 써본 적이 없다더니 한 두 번 써본 솜씨가 아닌데요?"

그녀는 글을 발표한 모든 사람에게 각기 다른 표현으로 칭찬을 했다. 그럼에도 마치 내게만 칭찬한 것 같아 큰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그날 제출한 수필 제목은 '맹지(盲地)'였.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없는 땅을 이르는 말이다. 막상 글을 발표하고 나니 마치 글쓰기 공부를 시작했지만 앞으로 나가기에는 두려움이 앞시작과 동시에 물러서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내 심정을 함축하는 것 같기도 했다. 물론 글에 그런 함축적 결론을 담아낼 능력은 못됐다. 표현이 서툴고 구성도 부끄러운 글이지만 음 쓴 것이어서 그런지 애착이 가는 글이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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